나는 독립적인 개체일까? 나와 너를 하나가 아닌 둘로 셀 수 있을까?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 생물학에 관련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한 독자가 많으리라.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개체는 주변 환경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공간 안에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를 일컫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나의 밖과 피부라는 인체조직으로 구분되고, 몸 밖 환경을 인식해 내 몸은 다음의 반응을 정한다. 더우면 땀 흘리며, 이곳저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있는 나는 분명한 생물학적인 개체로 보인다. 우리 집 귀여운 강아지 콩이도, 여름 밤 나를 괴롭히는 모기 한 마리도.
개체의 개념을 생물학은 진화의 관점에서 좀 더 넓게 확장하기도 했다. 흐르는 강물을 환경으로, 그 위에 떠 있어 강물의 영향을 직접 받는 작은 배를 개체로, 그리고 배 안에 담긴 배를 만드는 방법이 적힌 설계도를 유전자로 비유해보자. 설계도는 배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배는 강물의 영향을 받는다. 강물에 뒤집히면 배와 함께 설계도도 물속으로 사라지지만, 살아있는 개체는 소멸하기 전 거의 같은 설계도가 담긴 다른 개체를 만들어낸다. 후대로 이어지는 것은 배가 아니라 설계도다. 개체는 유전자의 탈것이다. 바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도킨스의 관점이다. 생물학적 개체는 외부와 공간적으로 구별되는 반응과 적응의 기본 단위다.
독자가 위의 얘기를 듣고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다시 생각해 보시길. 생물학의 개체의 개념은 사실 그리 명확지 않다. 인체 세포보다 훨씬 더 많은 박테리아 세포가 내 몸 안에 함께 살아, 내안에는 나보다 내가 아닌 것이 더 많다. 피부 안쪽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사니, 이들 박테리아가 나라는 개체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담긴 유전자가 다르니, 그렇지 않다고 답해도 딱히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은 개체의 의미를 더 곤혹스럽게 한다. 개미 한 마리를 개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개미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지 못하니, 도킨스의 의미로는 개미집단 전체를 한 개체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개미집단이 개체라면 일개미 한 마리는 나라는 개체를 구성하는 내 몸 세포 하나를 닮았고, 수개미는 날아다니는 정자 세포다. SF영화 ‘솔라리스’에는 넓은 바다 전체가 하나의 지적 생명체인 외계행성 얘기가 나온다. 공간 안 일정 규모의 국소성은 생물학적 개체가 가져야 할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