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밋밋하게 서 있었고, 김종인 과감히 무릎 꿇었다

추모탑 앞에 무릎 꿇고 15초가량 묵념한 김종인
16년 전 박근혜, 방명록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지난 2004년 8월 3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민주영령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왼쪽)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추모탑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묵념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뉴스1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19일 광주를 찾아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이 화제다. 그간 통합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의 대표 등 당직자와 소속 국회의원들이 여러 차례 망월동을 찾았고 그때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이 사실이나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16년 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망월동 묘지 방문과 닮은 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울림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

 

◆추모탑 앞에 무릎 꿇고 15초가량 묵념한 김종인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벌써 100번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 무릎을 꿇은 뒤 이렇게 말했다. “5·18 민주영령과 광주시민 앞에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라고도 했다. 발언 도중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였고, 종이를 쥔 손은 떨렸다. 과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당의 소극적 대응과 일부 정치인의 막말에 대해 사죄한 것이다. 

 

15초가량 무릎을 꿇고 묵념한 김 비대위원장은 일어서는 순간 잠시 휘청거려 주위의 부축을 받았다. 그는 “역사적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이상적으로 완성될 수 있지만, 권력자의 진심 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가 대표해서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고 자신의 행동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해 통합당은 김진태 전 의원 등 소속 정치인들이 5·18에 관해 ‘막말’을 한 것 때문에 1년 내내 곤욕을 치렀다. 올해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한테 참패한 것도 ‘세월호 막말’과 더불어 ‘5·18 막말’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한 뒤 일어나고 있다. 뉴시스

이와 관련, 김 비대위원장은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발언과 행동에 저희 당이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면서 용서를 구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보수 정당 대표가 추모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김 위원장이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16년 전 박근혜, 방명록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무릎을 꿇은 건 김 비대위원장이 처음이겠으나 그렇다고 보수 정당이 이제껏 망월동을 ‘외면’하기만 한 건 결코 아니다. 보수 정당 소속 정치인 개인이 5·18 묘지를 찾은 사례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당 지도부 차원에서 망월동을 참배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8월30일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주요 당직자와 소속 국회의원 등 100여명의 망월동 방문이다. 그때까지 ‘개인’ 자격으로 왔던 보수 정당 정치인들이 처음 ‘당’의 이름을 걸고 참배했다는 점에서 당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훗날 대통령(2013년 2월∼2017 3월 재임)을 지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그날 5·18 묘역에 도착한 직후 방명록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짧게 적었다. 이어 100여명의 의원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묘역 내부로 걸어 들어가 헌화와 분향, 경례, 묵념의 순으로 묘역을 참배하고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2004년 8월3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민주영령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참배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박근혜 대표는 “5·18묘역에 저는 여러 차례 왔었는데 우리 한나라당에 못 오셨던 분도 계시고 해서 이번에 다같이 마음을 하나로 해서 온데 뜻이 있다”고 말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을 맞아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다. 이날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5·18 묘역 참배 역시 통합당의 총선 대패 이후란 점과 비슷하다. 다만 16년 전 박근혜 대표는 이번 김 비대위원장처럼 추모탑이나 묘비 앞에 무릎을 꿇는 행보는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