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는 核확산 방지 협약… 1만기 넘는 핵탄두 발사 대기중 [세계는 지금]

끝나지 않는 핵무기의 위험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폭발한 뒤 버섯구름 형태의 연기가 지상 18.3㎞ 높이로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5년이 지났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2차 세계대전은 종료됐지만, 15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현재까지 피해자와 후손들의 고통스런 삶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국은 경쟁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수만명의 피해자들을 추가로 양산했다. 핵무기 피해자들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핵무기 위력을 실감한 국제사회는 이를 억제하기 위한 협상 등도 병행하고 있지만, ‘스트롱맨’들이 주요국 지도자로 등장하며 핵 억제를 위한 그간 노력이 흔들리고 있다.

 

◆수만명이 넘는 핵실험 피해자들

21일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1945년 7월16일 미국이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서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한 후 전 세계에서 2000여회의 실험이 이어졌다. 어느 나라도 공식적으로 핵실험 횟수를 공개하지 않기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고 추정치로 파악할 뿐이다.



가장 많은 핵실험 국가인 미국은 네바다주 사막지대와 마셜 제도(하와이와 필리핀 사이) 등에서 1032회의 핵실험을 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카자흐스탄의 세미팔라틴스크 등에서 715회, 프랑스는 210회, 영국과 중국이 각 45회,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3회, 2회의 핵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핵보유국이 2000년 이전까지 핵실험을 한 뒤 그 이후 군비경쟁이 완화되면서 실험을 멈췄다. 2000년대 들어선 북한이 2006년 이후 크고 작은 핵실험을 6회 이상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국가의 핵실험 피해는 인근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와 국립암연구소는 보고서에서 1951년에서 1962년까지 네바다주의 대기 중 방사능 물질 테스트 결과 핵실험으로 인해 최소 1만1000명 이상이 암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마셜 제도에서의 잦은 핵실험으로 섬 주민들은 1946년에서 1958년까지 히로시마 원자폭탄 때보다 매일 1.6배에 달하는 방사선에 노출됐고, 1954년 3월 비키니섬에서의 수소폭탄 실험 ‘캐슬 브라보(Castle Bravo)’땐 히로시마 때보다 1000배나 강한 방사능이 발생했다. 마셜 제도 주민들은 미국 정부에 23억달러(약 2조7300억원)의 배상을 요구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미국과학자연맹의 핵정보 프로젝트 연구원 맷 코르다는 “핵실험은 소외된 지역에서 항상 부적절하게 있어 왔다”며 “미국 정부와 과학계는 마셜 제도와 네바다 주민들에게 방사선 노출의 위험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경우 핵실험 장소였던 카자흐스탄에서 대기 중 방사능 물질을 테스트한 결과 최대 150만명의 주민들이 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와 폴리네시아에 남겨 놓은 방사성 폐기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영국은 초기 호주에서 핵실험을 했는데 주민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지적에 태평양의 크리스마스섬으로 실험 장소를 옮겼다. 중국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1964년 10월 첫 핵실험에 성공한 뒤 지속적인 실험으로 위구르인이 치명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한 연구에서 130만명에 이르는 위구르인이 방사선에 노출됐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핵실험의 결과 전 세계에는 1만기가 넘는 핵탄두가 언제든 발사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대 핵무기근절연구센터는 지난 6월 세계 각국의 전문기관과 연구자의 문헌을 근거로 세계에 존재하는 핵탄두가 1년 전에 비해 470개 줄어든 1만3410기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가별로 보면 러시아(6370기), 미국(5800기), 중국(320기) 순으로 핵탄두를 많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어 프랑스(290기), 영국(195기), 파키스탄(160기), 인도(150기), 이스라엘(80~90기) 순이었다. 북한은 35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이 연구팀은 추정했다.

미국 국방부 육군부는 최근 발표한 ‘북한 전술 보고서’에서 북한 핵무기는 20∼60기며, 매년 6기를 새로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핵보유국의 핵무기 통제 조치는 미흡

냉전시대 종료 후 핵보유국 등 강대국들의 무기 경쟁이 완화되면서 핵무기 수치는 줄고 있지만, 핵확산을 막기 위한 각종 국제협약들은 외면받고 있다, 핵무기 통제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국제 인도법의 원칙에 어긋나는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비준한 국가(지역)는 현재까지 총 44곳이다. 이 조약은 총 50개국(지역)의 비준으로 국제법적인 효력을 갖게 된다. 발효까지는 6개국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핵 보유 5대 강국은 이 조약 자체를 거부하고 있고, 일본과 한국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50개국이 비준하더라도 이 조약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핵무기 통제에 앞장서야 할 미국, 러시아, 중국은 오히려 서로를 견제하며 국제사회의 불안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군비통제와 연관된 조약에서 연이어 탈퇴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던 2015년 7월 이란의 핵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은 물론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과 맺은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2018년 5월 탈퇴했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감축·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대신 유엔, 미국, EU의 핵개발 관련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미국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對)이란 무기금수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0월 만료되는 이란 무기금수 제재 연장을 위해 자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지난 14일 부결되자 스냅백(snap-back: 이란 핵합의로 해제된 대이란 제재 복원) 조치 발동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이란뿐 아니라 EU 등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30년 넘게 러시아와의 핵개발 경쟁 등을 막기 위해 활용한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러시아가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백지로 만들어 버렸다.

INF조약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과 함께 미국과 러시아 간 핵통제를 가능케 한 양대 산맥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인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는 양국의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타트는 내년 2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한 5년간 추가 연장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포함한 새 협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협정 유지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원폭 투하로 파괴됐다가 재건된 우라카미 천주교당. 나가사키=김청중 특파원

INF조약이나 뉴스타트가 미국과 러시아 간 양자 조약이다 보니 G2(주요 2개국)로 불릴 정도로 급성장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조약이 필요하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중국까지 포함한 새로운 조약 필요성을 거론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한 미·러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며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을 꺼리고 있다. 푸충 중국 외교부 군축사 사장은 지난 7월 “중국 국민은 중·미 간 핵전력의 차이를 우려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중국 수준으로 핵 보유량을 감축한다면 중국은 기꺼이 ‘뉴스타트’에 참여할 용의가 있다”며 “미국은 INF조약에서 탈퇴하고 우주공간 무기까지 개발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모두 중국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 5월엔 러시아의 불이행을 문제 삼으며 항공자유화조약(OST: Open Skies Treaty) 탈퇴 방침을 밝혔다. 이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 유럽 국가 등 총 34개국이 가입해 있고, 회원국 간 상호 자유로운 비무장 공중정찰을 허용한다. 가입국의 군사력 현황과 활동을 파악함으로써 군비경쟁과 우발적 충돌을 억제하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빠지면서 러시아마저 탈퇴할 경우 세계 군사 안전핀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은 OST로 러시아의 전술핵무기 움직임을 추적하고 재래식 병력의 이동과 훈련을 검증할 수 있는데, 러시아까지 탈퇴할 경우 군사 증강을 견제해 온 유럽의 우려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8개국은 미국 탈퇴 후 성명에서 “항공자유화조약은 유럽·대서양 국가들의 안보와 투명성 제고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워크의 핵심적인 요소”라면서 “러시아와 함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