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장 회장,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자홍 엄마, 드라마 ‘공항 가는 길’ 고 여사….
사람들이 배우 예수정(65)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그는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무명 배우”로 칭하며 “제 이름을 몰라도 작품 속 인물로 불러 주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여성 노년 배우’란 말은 거부한다.
그는 효정이 일을 감당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가 “지극히 사실적”이라고 강조했다.
“노년의 모습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적극적으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보질 못했어요. 좀 섭섭했죠. 노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게 이 작품의 미덕 같아요. 사실 노년은 이래도 저래도 살아요. 짬밥이 있잖아요. 우린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청년들이 불쌍하죠. 죽음처럼 노년도 피할 수 없는데 늙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무서워하고 있어요. 궁금해 하지도 않죠. (광화문 집회 등) TV 뉴스에 나오는 노년 모습은 가기 싫은 길이잖아요. 그렇지 않은 노년이 훨씬 더 많아요. 그들은 워낙 조용해 볼 수 없어요.”
이어 나이 듦에 대한 지론을 펼쳤다.
“노년에도 성장한답니다. 그게 영화 핵심이고 희망이에요. 내겐 가까운 미래이고 여러분에겐 먼 미래, 우리 미래잖아요. 정신 줄 놓지 않으면 성장하게 돼 있어요.”
그는 “어머니를 보며 나이 드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다”면서도 “내가 나를 제일 억압했다”고 젊은 시절을 돌아봤다. MBC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최불암 분) 어머니 역을 맡은 고 정애란이 어머니다.
“항상 바른 자세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어요. ‘배우 딸이라 저렇다’ 소리가 듣기 싫었거든요. 스스로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걸 느끼는 순간이 성장의 순간이라 봐요. 인생에서 단 한 발을 떼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 점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담아낸 게 좋습니다.”
연극 무대에도 꾸준히 오르는 그는 알아보는 팬들이 늘며 “파자마 바지를 입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유를 잃었다”며 웃었다. 화면에서처럼 따뜻하고 기품 있으면서도 유머감각이 넘쳤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