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냉전의 시대가 열렸다.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지난 7월 30일 닉슨 도서관 앞 연설에서 중국을 맹목적으로 포용했던 옛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했다. 미국은 이데올로기나 체제 경쟁의 차원을 넘어 이제 권위주의적인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종식시키려 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중국을 주 위협으로 하는 새로운 외교·안보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연설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 미군의 배치가 과거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형태로, 중국을 상대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최근 미 육군의 전략보고서를 다시 상기시킨다. 중국을 최대의 위협으로 상정하고 대응하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시기 외교·안보전략이라면, 이는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과 일정한 균열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제 북한을 주 위협으로 상정한 한·미동맹의 역할을 중국을 주 위협으로 상정한 동맹으로 전환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 중국은 주 위협이 아니다. 북한이 주 위협이다. 그러나 한국의 동맹인 미국에는 중국이 주 위협이다. 한국은 동맹인 미국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겠지만, 그러나 미국의 이해와 완전히 등치시킬 수는 없는 형편이다. 21세기 경제가 곧 안보이기도 한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의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고 미국이 이를 대체해 줄 수도 없다. 군사·안보적으로도 중국은 바로 지척지간에 있다. 한국은 거세게 미·중 간에 선택을 강요당하고,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도 커다란 압박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가 기존 10억달러 수준의 방위분담비를 일년에 50억달러로 인상한 것은 단순한 협상용 압박이 아니다. 이제 주한 미군의 주둔과 한·미동맹 자체를 협상의 대상으로 놓고 압박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장 능력을 완성해 놓고, 이스칸데르 단거리 미사일과 다종의 다연장 포 개발을 통해 한국과 주한미군을 방어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양제츠가 긴급히 방한하는 데에는, 문재인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촉구하기 위한 측면도 존재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이 대중국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도 존재한다.
중견 국가로서 한국은 결국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새 시대에는 스스로의 국방태세를 강화하여 대북, 대미, 대중 협상에서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국방에서의 기초체력 확보는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북핵의 위협에 대처할 ‘공포의 균형’ 달성은 남북 협상의 출발점이 되고, 공존을 전제로 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신뢰감이 크게 약화된 미국에 우리의 운명을 내맡기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도 동등한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첩경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