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광화문 집회로 뒤숭숭하던 다음 날 일요일, 오랜만에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찾았다. 공연기획사 대표로 있는 지인이 꼭 봐야 할 공연이란다. 텔레비전 오디션을 ‘팬텀 싱어’를 통해 선발한 크로스오버 중창단 세 팀이 한 무대에 선단다. 성악 등 음악 정규 교육을 받은 가수들이 장르나 시대를 가리지 않고 경연을 해서, 최종 무대에 선 열두 명의 젊은 가수들이 네 명씩 팀을 만들어 등수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글쓴이가 다녀온 공연은 세 번째 시즌을 끝마친 프로그램 결선 진출자들이 등장하는 무대였다.
아주 오랜만에 찾은 관객석이 낯설기만 하다. 한 자리씩 떨어져 앉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공연 내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박수만 칠 수 있고 함성을 지를 수는 없단다. 물론 글쓴이야 공연을 즐긴다는 측면보다는, 일의 연장으로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는 무게감이 더한 자리이기는 하다. 우승을 차지한 라포엠,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선보이겠다는 준우승팀 라비던스, 그리고 3위를 차지한 레떼아모르. 팀도 팀이지만, 이 열두 명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져 화음 속에 열창하는 모습을 보니 왜 수많은 열혈 지지자들과 함께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성 관객보다 압도적인 비율로 여성 관객들이 많다. 이미 수만 명의 회원을 자랑한다는 팬클럽에서도 이 공연장 안팎으로 열심히 홍보 중이다. 아이돌 그룹 팬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팬데믹 시대에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공연이었다. 공연계도 분명 희망은 아직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글쓴이가 유독 이 공연을 찾은 이유는, 클래식 성악을 전공한 젊은 가수들이 해석하는 여타 장르 음악들이 과연 관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외모, 가창력, 선곡, 재능, 그리고 요즈음 반드시 필요하다는 예능감 등등.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준우승을 차지한 팀, 라비던스 때문이었다. 구성 자체는 국내외 크로스오버 중창단의 구성과 같다. 두 명의 테너, 바리톤, 베이스. 그런데 멤버 구성원 가운데 판소리 전공자가 있다. 국악도 크로스오버 또는 퓨전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선언한 팀이다. 프로그램의 세 번째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국악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 널리 퍼져있는 좋은 음악을 부르겠다고 선언하면서, 월드뮤직 크로스오버 등등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팀이기도 하다. 수식어는 아무래도 좋다. 이들이 불렀던 노래들은 영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노래까지 있다. 그야말로 월드뮤직이다. 언어도 생소한 판에 그 안에 담긴 정서를 크로스오버 스타일로 표현해야 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꽤 어렵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배우고 불렀던 방식을 어쩌면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노래 방식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는 뜻도 된다. 최소한 라비던스의 선택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이 이스라엘 노래를 불렀을 때, 그 모습이 이스라엘 현지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앞으로 세계 각지의 다양한 노래들을 부르면서, 국악이든 가요든 우리의 노래들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지난 16일 일요일 오후에 만났던 ‘팬텀 싱어 시즌 3 갈라 콘서트’는 이렇게 여러 화두를 던지는 공연이었다. 크로스오버라든가 월드뮤직이라는 음악 용어를 잣대로 들이밀자면 꽤 어렵고 복잡할 것 같지만, 우리 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단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그 시도는 계속해야 한다. 그게 라비던스라는 크로스오버 중창단의 어깨에 달린 커다란 짐이다.
황우창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