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의사색의창] 도서정가제는 어찌될까

17년 된 도서정가제 존폐기로
일부서 책값 상승 주원인 꼽아
폐지 땐 서적보급 질서 무너져
독자 부담 완화 개선안 마련을

요즘 출판계는 도서정가제의 존폐 문제로 온통 시끄럽다. 도서정가제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까지 제기되더니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도서정가제 폐지에 20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서정가제로 인해 오히려 서적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책값이 비싸면 서적 판매율이 떨어진다. 중소 출판사의 경영도 그만큼 악화한다. 책이 잘 팔리지 않게 되니 지역의 작은 서점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도서정가제가 출판시장을 안정화하기는커녕 독자들에게도 부담만 주고 있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처럼 도서정가제를 법률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출판시장의 규모가 가장 큰 영어권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도서정가제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 가운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에서 도서정가제를 단독 특별법으로 제정하여 시행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자국의 인쇄산업과 출판문화를 지키고 안정적인 도서의 보급유통을 위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취지를 따라 2003년 도서정가제를 처음 도입했다. 도서 출판물에 대한 할인판매 경쟁이 지나쳐 도서 시장이 황폐화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도서정가제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 제도의 핵심 내용을 보면 일반 서점에서는 모든 도서에 대해 정가 판매가 원칙이다. 인터넷 온라인 서점에만 정가의 10% 가격할인을 인정하고 마일리지 적립 등 5%의 이익을 포함하여 정가의 15% 한도 이내에서 가격을 할인할 수 있도록 정해 놓고 있다.

권영민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

조선시대에 간행된 책에는 가격 표시가 없다. 책을 펴낼 당시부터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이란 그 자체로 인간의 삶에 필요한 가치와 규범을 담아 놓는 그릇이다. 책은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지식을 담고 있으므로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국가기관에서 책을 만들어 널리 백성들에게 배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시장에서 널리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다. 이 무렵에 근대적 성격의 상업적인 출판사가 등장하여 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제작하고 가격을 붙여 서점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은 책의 원고를 작성하고 출판사가 이를 책자로 만들면 서점에서 일반 독자를 상대로 판매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에서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적 유통구조가 확립된 것은 겨우 10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책값은 국민의 소득 수준보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1970년대 중반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때에 산 책들을 보면 그 가격이 대개 3000원에서 4000원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서점에서 판매되는 단행본 학술서적은 책값이 3만원에서 4만원 정도로 바뀌었다.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10배 정도 가격이 올랐다. 수십 배로 뛰어오른 물가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10배로 오른 책값 자체를 놓고 보면 그렇게 책값이 비싸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어떤 설문 조사를 보면 책값이 비싸서 책을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볼 시간이 없어서 책을 안 산다는 대답이 많았다. 통계청에서는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액이 250만원을 조금 넘는다고 발표했는데, 이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국민 1인당 월평균 도서 구매 비용이 5000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도 나왔다. 지식과 정보를 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매체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지만 고급 커피숍의 커피 한 잔 값 정도에 불과한 액수가 한 달에 책을 사는 데에 쓰는 돈이라는 사실을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다.

도서정가제는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면 어디서든지 그 책이 같은 가격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가격을 유지하게 한다는 점에 그 본질적 의미가 있다. 책이 독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은 다양하다. 서적의 가격은 출판사가 책의 제작과정과 유통보급 과정에 소용되는 각종 비용과 적정 수준의 이윤을 감안하여 정한다. 이것은 모든 상품의 가격을 제조업체가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칙이다. 하지만 판매·유통을 담당하는 곳에서 이 가격에 관여할 수가 있다. 대형 서점이나 유통업체가 나서서 가격할인 경쟁을 벌이면 중소형의 서점들이 이를 견디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서점은 서점대로 가격 경쟁에 뛰어들면 결국 서적 보급의 질서가 무너진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와 서점이 모두 원하고 있는 특별한 제도다. 정부에서는 소비자의 부담을 줄일 방법이 있다면 도서정가제를 새롭게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도서 구매자인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요구까지 반영하여 합리적 개선방안을 만든다면 누구도 그것을 반대할 리가 없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인쇄 출판물의 유통 질서가 깨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 출판시장에서 겨우 터를 잡아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기 어렵다. 침체에 빠진 출판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도서정가제 폐지가 아닌 인쇄출판 매체의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각도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책은 단순한 공장의 생산품처럼 값싸게 사서 쓰다가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책 속에는 한 개인의 창조적 노력과 한 사회의 문화적 정신이 담긴다. 책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공통된 의무이다.

 

권영민 미국 버클리대학 겸임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