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돗물 수질·맛 세계 최상… 국민들 몰라주니 섭섭아리∼” [S 스토리]

아리수가 풀어주는 수돗물 오해&진실
‘못믿을 물’ 오명 십분 이해
지금은 세계 최고 ‘믿을 물’
국민 사랑받는 ‘먹는 물’로

‘아리수’라고 들어보셨나요. 서울시의 수돗물 브랜드로 2004년 태어난 제 이름인데요, ‘큰 물’이란 뜻입니다. 다른 지역에도 형제가 많아요. 부산 ‘순수365’나 충북 청주 ‘달래水’, 전북 ‘전주얼수’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수돗물 브랜드는 모두 한참 어린 동생들입니다. 수돗물계 맏형답게 제 ‘스펙’은 상당합니다. 서울시내 6개 정수센터는 모두 고도처리시설이 돼 있고 2016년 국내에선 처음 ISO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민이 참 많습니다. 인천에 사는 동생 ‘미추홀 참물’ 때문입니다. 지난해엔 ‘붉은 물’로 사고를 치더니 지난달엔 깔따구 유충 사태로 졸지에 전국의 수돗물을 ‘믿을 수 없는 물’로 만들어 버렸죠. 유충 사태 이후 환경부가 전국 49개 고도처리정수장을 전수조사한 결과 인천 공촌과 부평 등 7곳에서만 유충이 발견됐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필터를 사거나 정수기를 놓고 생수를 쟁여놓더군요.

 

이런 국민들 불안감은 십분 이해가 됩니다. 매일 마시고 쓰는 수돗물에서 징그러운 벌레가 나온다면 얼마나 공포스럽겠습니까. 솔직히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이후 우리 가족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이번 유충 사태는 너무 아프게 다가옵니다. 국민에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불안과 관계 당국에 대한 불신, 수돗물에 대한 전반적인 비토 분위기를 심어줘서입니다.

 

◆한국 수돗물 맛과 품질은 세계 최상위권

 

그럼에도 가슴 한편엔 서운한 마음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의 맛과 품질, 위생은 세계가 인정하는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유엔이 발표한 국가별 수질지수(water quality index)를 보면 한국의 수돗물은 핀란드(1.85), 캐나다(1.45), 뉴질랜드(1.43) 등에 이어 세계 8위(1.27)입니다. 미국수도협회(AWWA)의 정수장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별 다섯개를 받았고, 2013년 세계물맛대회에선 7위에 올랐습니다.

실제 우리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받고 있어요.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 90개, 미국 89개, 일본 51개보다 많은 120∼250개 항목에 대해 수질검사를 합니다. 국가에서 지정한 60개 항목에 더해 지자체별로 취수, 정수, 배수 과정에서 자체 항목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수돗물평가위원회가 지난 4일 서울 광암아리수정수센터(경기 하남)에서 채수한 수돗물과 정수기 수질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정수기에서만 복통 등을 일으키는 일반세균이 4CFU/mL 검출됐습니다. 

 

수돗물은 생수나 정수기 물에 비해 맛도 좋은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수돗물평가위는 미네랄 함유량도 조사합니다. 칼슘과 칼륨, 나트륨,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20∼100㎎/L 함유돼 있으면 건강하고 맛있는 물로 평가됩니다. 미네랄은 같은 조사 지점 수돗물에서 27.3㎎/L 검출된 반면 정수기 물은 1.18㎎/L에 불과했죠. 실감이 안 나신다고요?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시청사 방문객 762명을 대상으로 저와 생수 2종에 대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235명(31.6%)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물’로 저를 꼽아주셨습니다.

상수도 관련 기반시설도 세계 최상위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2018년 현재 99.2%입니다. 국민 5307만명 중 5265만명이 수돗물을 공급받아요. 수도관 길이도 엄청납니다. 전국의 모든 수도관을 연결하면 21만7150㎞인데, 이는 서울역과 부산역을 274회 왕복할 수 있는 길이입니다. 누수율은 2009년 11.4%에서 2018년 10.8%로 소폭 줄었습니다.

 

가격도 매우 쌉니다. 2018년 현재 전국 평균 수도요금은 t당 737원입니다. 먹는샘물(생수) 1t 가격의 1000∼3000분의 1 수준입니다. 국민 한 명당 하루 평균 물사용량이 295L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167원 정도만 ‘물세’를 내는 셈이지요. 스페인 마드리드 시민은 하루평균 241원, 영국 런던은 417원, 프랑스 파리는 457원, 미국 뉴욕은 1517원의 수돗물 값을 내고 있습니다. 

◆직접음용률 7.2%…“수도관·상수원 못 믿어”

 

그런데 아쉽게도 이처럼 저렴하고 위생적이며 맛도 좋은 수돗물을 드시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시 서울시청을 방문한 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응답자의 74.8%는 밥이나 국, 찌개 등 음식을 조리할 때 저를 찾지만 냉수를 그대로 마실 때는 저(23.8%)보다 정수기물(41.9%)이나 생수(27.5%)를 더 찾았습니다. 

 

다른 동생들 형편은 더 열악합니다. 경남 수돗물의 음용률은 43.5%이지만 직접 마시는 비율은 7.0%에 불과했습니다. 수돗물홍보협의회와 수돗물시민네트워크의 2017년 수돗물 음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직접 음용)는 응답자가 7.2%에 그쳤습니다. 수돗물을 ‘끓이거나 조리해서 마신다’는 비율도 절반에 못 미치는 42.2%였습니다.

 

왜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위생에 대한 우려와 관리 당국이 미덥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부산시의 지난해 상수도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52.7%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로 ‘물탱크 및 수도관 불량’을 꼽았습니다. ‘상수원에 대한 불신’이 28.4%로 뒤를 이었고 ‘냄새와 이물질’(15.0%), ‘부정적 언론보도’(3.6%) 등의 순이었습니다.

절반도 안 되는 음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설비 현대화 △전문 인력 확충 △시민교육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사실 노후관 교체 문제는 모든 지자체의 고민거리입니다. 2018년 기준으로 21년 이상 된 노후 수도관은 전체(21만7150㎞)의 33.0%인 7만1686㎞나 됩니다. 수도관의 3분의 1 정도가 교체나 정비가 시급한 셈이죠. 

 

지역별 격차도 상당합니다. 상대적으로 관할 면적이 좁고 재정여건이 좋은 서울시의 노후관은 0.5%인 반면 경남 진주시는 50%가 넘습니다. 농촌지역 사정은 더 딱합니다. 살림도 빠듯한 데다 가성비(비용 대비 효과)가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돗물 품질이 낮은 지자체가 오히려 수도요금은 더 받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관계 당국의 공급 위주 마인드를 깼으면 합니다. 물론 공공기관으로서 정수기 회사나 생수회사처럼 대놓고 광고를 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미추홀 참물 유충 사태처럼 고도정수처리장 역세척에 관한 매뉴얼이 없거나 단체장이 별다른 사과 없이 “총리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대응하면 소비자 입장에선 수도행정에 대한 불신을 쉽게 거두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집 수돗물 안심 확인제’처럼 국민들에게 ‘관리받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체감형 서비스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조언이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수돗물은 전기나 가스 같은 대표적인 공공재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상수도 관련 예산만 한 해 5조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음용률이 절반도 안 되면 그만큼 혈세를 들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겠죠. 당국이 알아서 수질관리를 해주고, 저렴하게 마실 수 있으며, 사고가 발생하면 빠르게 대처하고 보상까지 해주는 수돗물이라면 금상첨화일 겁니다. ‘맛 좋고 건강한 수돗물’을 자연스럽게 마시는 시대가 속히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깔따구 유충사태 인천 부평정수장 가보니

 

지난달 9일 인천에서 수돗물 유충 사태가 처음으로 발생했다. 서구 왕길동의 한 가정집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왔다는 신고가 인천상수도사업본부로 접수된 것이다. 이후 서구지역 맘카페 등에는 관련 게시글이 동영상·사진과 함께 잇따라 올라왔다. 가느다란 붉은 실같이 생긴 벌레가 필터에 걸러져 꿈틀거린다는 등의 내용과 유충이 기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유충은 서구 일대 수돗물을 공급하는 공촌정수장에 이어 인근의 부평정수장에서도 발견되며 확산됐다.

 

28일 이번 사태가 벌어졌던 부평정수장을 찾았다. 이곳은 국가기반시설로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제한된다.

 

1971년 8월 제1공장이 가동된 뒤 50년째 부평·계양구 일대 약 80만명의 시민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팔당 상수원수 등을 끌어와 취수·가압, 응집·침전, 소독 등 일련의 정수 처리가 이뤄진다. 부평정수장은 지난달 19일 합동정밀조사단이 활성탄 여과지에서 깔따구의 죽은 유충을 찾아낸 곳이다. 당시 조사단이 4시간이 넘도록 여과지를 샅샅이 살핀 끝에 발견했다. 활성탄 여과시설은 인천시가 오존AOP(고도산화)와 함께 3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6년 준공했다.

인천 부평구와 계양구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는 부평정수장 내 고도정수처리시설인 활성탄 여과지 상부가 대형 방충망으로 덮여 있다.

일반공정으로 제거할 수 없는 미량유기물질 등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국내의 전체 500여곳 정수장 중 10%가량만 도입·운영 중이다. 기존 여과지에서 정수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오존·활성탄 여과를 추가적으로 거친다. 하지만 유충 사고 직후에 당초 표준처리로 전환됐다.

 

당장 활성탄 공정은 멈췄지만 향후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부평정수장 관계자는 “기존 활성탄을 빼내 완전히 세척한 뒤 다시 채워 넣고 운전하고 있다”며 “깔따구 알의 부화와 유충으로 성장까지 20일가량 걸린다는 지적에 역세척 주기는 2일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부평·공촌정수장 수계의 노후수도관도 2025년까지 교체한다.

 

이 외 애플리케이션이나 전화로 신청하면 가정을 방문해 수질 상태 등을 점검하는 ‘인천형 워터케어’를 도입한다. 시민들이 직접 수질을 모니터링하는 체계도 구축하기로 했다.

 

부평정수장 관계자는 “현재 유충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고 관련된 민원도 없지만 수돗물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는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라며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인천의 물을 제공할 수 있도록 꼼꼼히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전국종합, 인천=강승훈 기자 stsong@segye.com

 

*기사는 서울시 등 각 지자체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들과 독고석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장정화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 통화·인터뷰, 2018년 상수도통계 등 관련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