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브리핑 중 표백제와 살균제가 바이러스를 없앤다는 연구 결과에 흥미를 보이며 살균제를 인체에 주사하거나 폐에 흡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불쑥 거론했다. 황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발언에 대한 비난은 신랄했다.
“돌팔이 약장수가 나온 것 같다.”
칼 마르크스, 찰스 다윈, 나폴레옹은 비소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마르크스는 정신을 흐릿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비소의 사용을 중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윈는 비소 중독에 시달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방에 바른 벽지에서 뿜어져 나온 비소가 죽음의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무색무취의 특성 때문에 살인에 자주 사용된 독극물인 비소는 의약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약효와는 전혀 상관없는 발열, 위통, 속쓰림, 류머티즘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선전되었고, 심지어 강장제로도 이용됐다. 19세기에는 많은 제품에서 자유롭게 사용됐다. 인기가 많았던 비소 섭취방법은 “빵에 비소를 넣어 ‘빵 약’을 만들거나 후추와 함께 먹는 것”이었다.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건강해 보이는 홍조를 띠게” 하는 특성이 있어 “비소를 먹고 아름다움을 얻었다는 얘기가 주목을 받았고”,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독을 먹고는 마지못해 죽어간 여성들이” 흘러 넘치기도 했다.
◆정신병 치료에 활용된 피뽑기
고대 로마인들은 여성의 생리가 신체 내부의 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피를 뽑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낳았고, ‘방혈법’이 만병통치라는 믿음으로까지 자리를 잡게 됐다.
이런 인식이 정신 건강의 영역에도 적용된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1623년 프랑스의 의사 자크 페랑은 상사병에 걸렸을 때 심장이 뛰지 않을 정도까지 피를 흘리라고 권했다. 18세기에 가장 악명 높은 정신병원이었던 영국 런던의 세인트 메리 오브 베들레헴 병원에서 피를 빼는 것은 설사와 구토와 더불어 의사들이 가장 흔히 하는 처방 중 하나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의사였던 벤자민 러시가 제시한 조증에 대한 처방 역시 피뽑기였다.
“20온스에서 40온스의 혈액을 한꺼번에 뽑는다…. 빠르게 다량의 피를 뽑으면 사람들은 놀랄 만큼 조용해진다.”
◆왕의 손길로 사라진 종양(?)
돌팔이 의학은 때로 신성한 왕권의 표시로도 활용됐다.
‘연주창’이란 질병이 있다. “목의 림프절을 감염시키는 크고 볼품없는 결핵의 일종으로 치명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흉하게 자라 외모를 크게 훼손하는” 질병이다. 연주창의 치료를 위해 옛 사람들이 크게 기댔던 것이 왕의 손길이다. 왕의 손길이 닿으면 추한 종양이 사라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11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왕과 프랑스의 필립1세는 연주창을 치유하는 공개적인 행사를 열었다. 이 병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왕실에 모였고, 왕은 치료를 위해 병자들을 어루만졌다. 이들 이후 연주창 치료 능력은 신성하게 계승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오직 ‘진정한 왕’만이 가진 것으로 간주된 이런 능력은 “정통성의 중요한 측면이 되어 영국의 통치자들은 700년, 프랑스의 통치자들은 800년 동안” 지켜왔다고 한다. 연주창 치료 행사는 시들해지기도 했으나 왕권이 추락할 때면 정통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며 부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