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난 좌우 안 가리는 실용주의자… 국민에 자기이념 강요 안 돼” [세계 초대석]

‘마음의 짐’ 덜고 도정 매달려… 바람 같은 지지율에 일 못하면 안 돼
재난소득은 경제정책, 세금 낸 국민 똑같이 받아야 마땅
중앙정치 해봐야만 농사 잘 짓나, 도정으로 성과 내서 인정 받을 것

“대선 후보 지지율은 안정적이지도 않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바람 같은 거죠. 크게 관심 갖지 않고 의미 부여도 안 하려고 합니다.”

 

지난 7월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 이후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현재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세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다. 하지만 이 대표 등 집권여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기간에 이례적으로 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더 주목받은 데는 이 지사가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것과 무관치 않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도 재난지원금(기본소득) 문제로 정국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전 국민 추가 지급을 주장하면서 ‘선별지급’에 무게를 둔 정부 여당과도 입장을 달리하는 모습이다. 급기야 자신의 주장에 대해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철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충돌하기도 했다. 정부의 숱한 부동산 대책이 무위에 그친 것을 놓고는 ‘정책 불신을 자초한 탓이 크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이 지사와의 일문일답.

 

―지사직 상실 위기에 놓였던 사건 재판으로 대법원 선고 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도 광역단체장 (도정)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비결은 뭐라고 보나.

 

“정치야 그만두면 그만이다. (다른) 할 일도 많고, 제가 정치를 선호하거나 즐겨 하지도 않는다. 정치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꿈을 이루려는 도구일 따름이다. 큰 미련이 없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 삶이 박탈되고, 가족들이 경제적 나락에 빠질 수도 있는 재판이어서 스트레스가 엄청나 공무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가 당내 조직이나 후원자, 후광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살길은 국민의 지지와 성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해 도정에 집중한 결과라고 본다.”

 

―대법원 선고 이후 지지율도 치솟았다. 기분이 어떤가.

 

“사실 대선 후보 지지율은 유행 같은 측면이 있다.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과거(지난 대선 당시)에 잠깐 1등한 적 있지 않나. 그러다 나락으로 떨어졌지만.(웃음) 거기(지지율)에 천착하면 사고 나게 돼 있다. 일반 정치인이면 괜찮은데 나는 도민 1370만명의 삶을 어깨에 짊어진 행정관이다. (지지율에) 영향받아 왜곡되거나 (도정에) 집중하지 못하면 배임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문제와 부동산 정책 불신 원인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원=이제원 기자

―이재명 지지와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합리적이네’라며 거부감을 많이 던 영향도 있어 보인다.

 

“나를 약간 공산주의자 같은 느낌으로 보지 않나. 과격한 사람이라고.(웃음) 나는 좌파나 우파를 전혀 가리지 않고, 좋은 건 다 골라 쓰는 실용주의자다.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으로서 자기 이념과 지향을 행정이나 주권자(국민)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남시장 시절 청년 기본소득 같은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등 튀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띄엄띄엄 보도되면서 ‘혹시 공산주의자 아닐까. 좌파 아닐까’라고 인식한 것 같다. 그러다 저에 대해 좀 더 알게 될 기회가 많아지면서 달리 보게 된 듯하다. 정치와 행정에 중요한 건 균형감과 합리성, 안정감이다. (정치인이) 많은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불안하게 도박하고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정부의 강화된 부동산 정책 중 1주택 실거주자도 집값이 비싸지면 세부담이 커지도록 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주택을 많이 가졌냐 적게 가졌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주택이 비싸냐 싸냐도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정당하게 돈 벌어 전망 좋고 마음에 드는 집을 옆집보다 2배 비싸게 사겠다는 걸 어떻게 말리느냐. 자연스러운 욕망인데. 집값이 싼 게 정의도 아니고, 비싼 게 부정의도 아니다. 다만, 투기나 투자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이 뭐냐. 원래 주거용이다. 생필품은 보호해주고 사치품이나 투기 자산은 (세금)부담을 늘려도 되는 거다. 1주택이라도 비주거용 투기·투자자산이면 그래도 된다. 그러나 실주거용 1주택이라면 고가라고 해서 불이익을 주기보다 인정해주는 게 낫다.”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 주장에 재정 건전성 악화가 걸림돌로 지적되는데.(이 문제로 홍남기 부총리가 최근 이 지사를 비판한 것과 관련해 1일 통화로 입장을 물었다)

 

“기본소득과 재난지원금 얘기가 나오면 자꾸 돈을 뿌리는 식으로 그냥 나눠준다고 생각한다. 과거 현금으로 줄 때는 그런 요소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정 기간 안에 써야 하는 지역화폐로 주니까 ‘헬리콥터 머니’가 될 가능성이 제로가 됐다. 쓰면 무조건 100% (지역 상권) 매출로 연결되고 매출이 늘면서 생산이 늘어난다. 옛날처럼 막 퍼주고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경제 선순환을 위한 마중물이다. 성남시장 시절 처음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하자 ‘깡’하라는 것이냐고 욕 들었는데 지금은 전국에 다 퍼졌지 않나. 선별지급과 달리 보편지급이어서 재정 건전성을 해친다는 식의 주장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서구 선진국들이 국가부채를 늘리며 전 국민 소비지원에 나선 것은 오류인가. 홍 부총리가 가장 중시하는 우리의 국가부채는 40%대로 외국 평균(11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위기 대응 경제정책이라면 평소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고소득자)을 왜 빼느냐. 그 사람들이 앞으로 세금을 내겠느냐, 안 낸다고 그러지. 통합에도 저해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답답했을 것 같다. 20차례 넘게 정책을 내놓아도 집값은 폭등하고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대중의 욕망을 어떻게 통제하나. 부동산 정책을 낼 때마다 (대중은 정부의 진정성과 실현) 의지를 의심한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집을 여러 채 갖고서 집값을 통제한다고 하니 안 믿는 것이다. 권위주의가 아니라 국민 신뢰에 기반한 행정의 권위가 있으면 51%짜리 엉성한 (정책도 국민이) 다 듣지만, 불신이 크고 압박이 클 때는 99.9%로 틀어막아도 0.1%로 새서 폭발해 버린다. 정부 정책 자체는 (집값 안정화를 위해) 촘촘히 해놨다고 본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집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공포수요를 없애야 한다. 장기임대주택을 지어 공급하겠다고 하면서 정책의 신뢰만 있으면 확 줄 것이다. 그게 경기도의 기본주택이다.”

 

―일각에선,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해보지 않은 대통령이 없었다며 이재명의 약점이라고도 하는데.

 

“중앙정치, 소위 여의도 정치를 경험한 것이 도움되느냐, 안 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농사는 일꾼의 역량과 성실함에 달린 거지, 그게 호미 성능이나 밭에 달린 건 아니다. 대개 정치인들은 농사를 잘 안 짓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예쁜 손 가진 머슴이 좋으냐, 열심히 일하지만 흉하게 보이는 머슴이 나으냐. 물론 정치란 여의도에서 하는 거다. 불리하지만 도정을 잘해서 성과를 내면 유리함으로 바꿀 수 있다.”

 

―청년들의 삶이 너무 고단한 시대다. 소년공 출신으로서 공감을 많이 할 듯한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제가 기본소득에 관심 갖는 이유다. 인류는 지금까지 인간 노동을 통해 생산물을 얻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노동의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이다. 노동의 종말이 다가오니 일할 곳이 없어진다. 일자리가 줄어 개인의 가처분소득도 감소하고 충분한 소비가 안 되면 시장 자체가 사라져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지금 청년 문제는 그들이 게을러서도, 정부 의지가 부족하거나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양적으로 팽창해온 시대에서 질적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맞게 정책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정말 우리 재정으로 감당될까.

 

“이 문제는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수요 자체가 없는데 재정지출이 어디에 집중돼야 하나. 일종의 양적 완화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우리 기성세대가 살았던 방식으로 살지 않을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적은 소득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전 그게 기본소득이라고 보는 거다. 연말정산할 때 소득공제라는 게 있다. 그런데 부자들이 많이 받는다. 연간 60조∼70조원 되는데 이 중 25조원 정도를 (돌리면) 1인당 (연간) 50만원 정도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

 

―계곡 불법 영업행위 정비 등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행정을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데 정책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나.

 

“현장에서 찾는다. 페이스북,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등의 댓글은 다 읽는다. 대선 당시 (지지세력인) 손가락 혁명단은 해산했고,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가 엄청 늘었다. 어제도 새벽 2시에 자서 오전 7시에 일어났다. 밤에 댓글을 보니 한 직장인이 코로나19 검체검사소의 운영 시간이 짧다고 해 평일 오후 9시까지 검사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지사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뭔가.

 

“‘공정’이다. 사람들이 불평등에 분노한다. 격차라는 게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다. 적폐 청산이라는 것도 불공정에 대한 분노에서 온 것이다. 자원이 풍부하고 기회가 많았던 고도성장 시대에는 불공정해도 (어느 정도 참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기회가 줄어 기회의 가치가 높아진다. 자원과 기회가 적어질수록 더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 공정함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대담=이강은 사회2부장

정리=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이재명 경기지사는 ●경북 안동 출생(1963년) ●중앙대학교 법학과 ●제28회 사법시험 합격 ●성남참여연대(옛 성남시민모임) 대표 ●민선 5·6기 성남시장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민선 7기 경기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