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가 얽힌 공직 수행을 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입법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추진 중인 상황에서 최근 여러 사안이 이 법안과 관련해 언급되면서 제정 필요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곧 21대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檢지휘권 있는데 수사 되겠나… 일각서 “‘아들 논란’ 秋, 직무 정지해야”
최근 군복무 당시 휴가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 대한 수사가 구체화되는 가운데 검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 추 장관의 직무를 일시적으로 정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무장관직 수행과 향후 수사에 대한 이해충돌 우려 때문이다.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덕곤)는 새롭게 발령을 받은 검사들을 중심으로 추 장관 아들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추 장관의 직무가 정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박은정 당시 권익위원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장관직 수행과 관련해 ‘직무관련성’과 ‘이해충돌’을 인정한 바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조 장관 배우자가 검찰 수사를 받는 경우 장관과 배우자 사이에 직무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며 “이해충돌 내지 직무관련성이 있을 때 신고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직무배제 내지 (직무) 일시정지 처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당시 “이해충돌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이끌어낸 검사 출신 이건리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정치적 논란을 겪자 지난해 12월 임기 절반을 남기고 사의를 밝혔지만, 박 전 위원장 등 만류로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부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권익위는 추 장관 아들 수사 관련 이해충돌 여부 관련해 관련 법률을 검토 중이며 입장이 정리되는 대로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추 장관의 아들 서모(27)씨는 군복무 시절 휴가 연장과 관련해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씨는 2017년 6월 5일부터 14일까지 9박10일 병가를 나갔고, 같은 달 7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이틀 뒤 무릎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서씨의 병가가 끝날 무렵 다시 9일 병가와 4일 휴가를 추가로 승인받는 과정에서 당시 야당 대표였던 추 장관의 압력 행사가 있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추 장관 보좌관이 당시 군 부대에 휴가 연장과 관련한 전화를 했다는 군부대 관계자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이에 앞서 추 장관은 “보좌관이 뭐하러 그런 사적인 일에 지시를 받고 하겠냐”고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녹취록 공개 후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키다 추 장관 측은 아들 변호인단의 입장문을 통해 “서씨의 병가 및 휴가는 법적 문제가 없다”며 필요한 서류는 모두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다만 보좌관이 전화한 의혹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부동산 이슈에도…“이해충돌 소지 높은 다주택 의원, 사전 회피 가능”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의 LG유플러스행(行)을 두고도 이해충돌 문제가 부상했다. 정의당 소속인 추 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후반기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최근 LG유플러스 비상임자문으로 취임한 것과 관련해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다. 과방위는 통신 관련 분야, 정무위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해 대기업의 활동을 감시하는 상임위원회라는 점에서 통신 분야 대기업 계열사인 LG유플러스에 취업한 것은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의당은 4일 추 전 의원의 LG유플러스행과 관련해 “정의당이 견지해온 원칙과 어긋난다”며 “정의당 의원으로서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취임 철회를 요청했다.
‘이해충돌 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자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5일 안에 소속기관에 신고해야 하고 이후 업무에서 아예 빠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를 어기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존 부패방지권익법에도 벌칙 등 강제규정이 있지만, 이해충돌 방지법은 이보다 정교하다.
다만 부패방지권익위법이나 공직자윤리법, 청탁금지법에도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명시해 사후통제 장치를 두고 있다. 공무원행동강령에도 이런 내용이 있지만 적용 범위와 제재수단이 한정적이라 사전 예방기능을 미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은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에서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주 언급됐다. 이들 단체들은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 방지 의무에 따라 다주택 보유한 국토교통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주거부동산 입법을 다루지 않는 상임위로 옮겨 이해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다주택 보유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전 위원장은 지난달 MBC라디오에 출연해 “많은 국민이 부동산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해 부동산이 많은 고위공무원은 정책 입안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많이 해주신다”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안에는 실제로 자신들이 이해충돌이 있을 경우 사전에 신고해 회피하는 조치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다주택자라고 해서 그 자체로 이해충돌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해충돌 소지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르면 보다 강제성 있는 이 법안을 부동산 이슈에 적용하면 부동산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고위공직자는 부동산 관련 업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치권에서 고위공직자의 다주택을 제한하는 법안 발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공무집행 중 얻은 정보로 다주택이 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고위공직자의 사유재산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