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깨트리는 것은 허락할 수 없어. 사라져야 해. 마음을 뺏긴다면 너도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추고 있을걸. 잘라라! 잘라라! 잘라라! 잘라라!”
무채색 도시 가운데서 미친 듯 빨간춤을 추는 소녀 카렌을 향해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카렌의 아버지 목사는 이 모습을 한탄과 절망으로 바라보다 과거 업보를 짊어지고 딸과 함께 춤을 춘다.
“카렌은 저주 받은 구두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멈추지 않으려 하는 것이며, 목사 또한 자신을 짓눌렀던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된 몸부림을 보여 줍니다. 이제껏 감춰 올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억제됐던 욕망의 몸짓이며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몸짓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전예은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돌아와 국내 활동 중이다. 서울시향 ‘아르스노바’ 위촉 작곡가로 활동하며 주요 음악제에서 작품을 발표했고 내년에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위촉작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클래식계가 기대를 거는 신예인데, 음악가 길을 걷기로 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라고 한다. 그것도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음악이 준 감동이 길잡이가 됐다.
“우연히 보게 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 음악 때문에 극 분위기가 극대화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이야기에 음악을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작곡가라는 꿈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오선지 위에 단단한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작곡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사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살아있는’ 클래식 작곡가는 이미 불멸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들과 경쟁해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처럼 한국에서 ‘살아있는 작곡가’로 활동하는 어려움에 대해 전예은은 “힘든 건 맞는데 좋아지고는 있다”면서도 “클래식 음악이 가요 등과 비교했을 때 점점 더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현실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어요. 작곡가들이 ‘조금만 더…’ 하면서 안간힘을 쓰는 건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발버둥이라도 치고 노력해야지 단 한 명, 단 한 곡이라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무대에서 연주가 되는 작곡가와 곡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다 같이 발버둥 치는 것 같아요. 실제 진은숙 선생님 같은 좋은 본보기가 있으니깐요.”
작곡을 하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전예은은 두려움 끝에 상상 속 아이디어가 음악으로 구현되는 희열을 되새김하듯 말한다. “한없이 개인적인, 그리고 매우 외로운 작업입니다. 매번 곡을 시작하며 마주하는 빈 오선지는 그 무엇보다 두렵게 느껴고요. 하지만 제가 상상하던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써 내려가며 조금씩 구현되어 나갈 때 느끼는 희열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을 때 그 희열은 더더욱 극대화되죠. 제가 상상하던 것이 음표로 나열되고, 또 그것이 소리를 얻어 음악으로 구현되는 과정이 꽤 매력적이고 중독적이어서 계속 작곡을 하게 됩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