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用中의 지혜

국제관계에선 ‘선한 이웃’ 없어
사드 사태 후 反中감정 높지만
中과 더불어 사는 법 터득 절실
정치·경제 이어 사람 이해해야

#1. 2017년 12월 베이징 서우두공항 3터미널에 내렸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다시 여몄다. 북·중 접경 지역 취재를 위해 단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특파원 부임 후 첫 접경지 출장인 탓에 긴장했던 것이 틀림없다. 좀처럼 하지 않는 터미널 실수를 했다. 다시 2터미널로 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터미널 앞에서 서성이던 모습이 의아했던지 한 중국 공안이 다가왔다. 터미널을 잘못 알았다고 이야기하니, 공안 차량으로 직접 2터미널로 데려다 줬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의 여파가 여전했던 당시 한 중국 공안의 예상하지 못했던 친절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2. “당신 부인의 휴대폰을 주웠어요. 1층 분실물센터에 맡겨 놓을게요” 전화기 너머 들리는 한 중국인 여성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2018년 10월쯤이다. 아내와 함께 베이징 시내 한 가구점을 찾았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아내가 4층 실내가구 코너에 휴대폰을 놓고 온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중국에서의 휴대폰 분실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은행 계좌와 연결된 탓에 사실상 지갑 역할을 해서다. 아내의 얼굴도 흑빛으로 변했다. 혹시나 해서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뚜뚜…. 잠시간 신호음이 울린 후 한 중국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 주말이면 한 번씩 가족과 함께 싼리툰에 간다. 한국의 이태원이다. 지난해 봄 어느 날 싼리툰에 갔다가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막 내렸을 때다. 딸아이가 인형을 버스에 놓고 내렸다며 울기 시작했다. 이미 출발한 버스를 잡을 수는 없었다. 멀어지는 버스를 멍하니 지켜봤다.

그런데, 갑자기 30미터쯤 앞에 가던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 안 보안요원이 내렸다. 한 손에 딸 아이 인형을 쥐고는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그 인형을 볼 때마다 그 보안요원이 생각나곤 한다.

한국 사회에서 반중 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드 보복에 대한 앙금이 여전한 탓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를 더욱 부추긴 측면도 있다. ‘짝퉁’이나 ‘가짜분유’ 그리고 ‘가짜백신 파동’ 등으로 인한 중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에 대한 통계나 발표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충분하다. 싼샤댐 붕괴 가능성을 전망하는 기사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미·중 갈등을 전하는 기사에 “미국을 지지한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오랫동안 중국을 연구했던 한 전문가는 중국을 겨냥해 “오만하고 무례하다”고도 했다.

국제관계에서 선한 이웃은 없다.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힘의 논리’만이 있다. 중국은 자기네가 가진 힘만큼의 외교를 한다. 2016년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영유권 분쟁에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패소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국 필리핀을 힘으로 굴복시켰다. 주변 약소국에는 한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중국이지만 미국의 발길질에는 그냥 맞고만 있다. 미국은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경을 접하고 있다고 할 만큼 지리적으로 가깝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당 1200편이 넘는 항공기가 양국을 오갔다. 경제 교류를 넘어 안보 문제와 북한 변수를 더하면 중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무게는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가 중국에 대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힘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항상 경계하고 대비하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증오와 혐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사드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중국 내 한국인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낄 만큼 중국인들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몸으로 체험했다. 타고 가던 택시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하차를 강요당한 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또 이외의 순간, 놀랄 만큼 친절한 모습에 “같은 중국인인가?”라며 어리둥절한 경험도 겪곤 한다.

모두 중국의 모습이다. 우리보다 강한 중국을 상대로 우리의 국익을 지키려면 지중(知中)하고, 용중(用中)해야 한다. 중국 정치도, 경제도 잘 알고 중국인도 이해해야 한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