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편의점에서 파는 기프티카드 10만원짜리 10장만 좀 보내줘! 급해.”
갑작스러운 딸의 카톡 메시지를 받은 엄마 김정선(가명·60)씨는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온라인 상품권 1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딸이 아닐 거란 의심은 전혀 없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딸이 확실했고 프로필 메시지 역시 딸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복권처럼 가려진 부분을 긁어 일련번호를 확인했고 이를 카톡으로 전송했다. 그러자 다시 딸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 미안한데 한 번만 더 보내주면 안 돼?” 김씨는 다시 100만원어치 상품권을 산 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난 뒤에야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화를 받은 딸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되묻고 나서다. 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도용한 범죄라는 걸 깨달은 김씨는 곧바로 대전동부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고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검거하겠다”는 답변만 듣고 돌아왔다.
#2 “부지의 80% 주인들에게 동의만 받으면 되는 거 아시죠? 지금 73% 정도 받았으니 2017년 말에는 철거가 마무리된 뒤 늦어도 2021년이면 입주가 시작될 겁니다.”
임경미(가명·61)씨는 이 말만 믿고 2016년 한 아파트 조합원에 가입했다. 아들 부부의 신혼집을 서울의 한 옥탑방에서 시작하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늦어도 2021년이면 구로역 근처에 120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니 여기서 생활하게 될 자식을 생각하니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파트 착공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임씨는 다른 조합원들로부터 ‘조합에서 매입한 땅은 3% 수준’이라며 ‘소송을 낼 테니 참여해 달라’는 연락만 받았다. 임씨는 소송비를 보냈고 다른 조합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임씨가 입금했던 5000만원을 온전히 돌려받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여기에는 847명이 46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법조계에서는 사기범에게 본 피해는 사실상 복구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피의자들에 대한 처벌도 다른 범죄에 비해서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최고의 예방법이라는 조언만 나온다.
형법 제347조에서는 사기를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사기범들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피해액이 클수록 피해자들은 피의자의 처벌보다 피해의 복구를 간절하게 원한다. 한 부장검사는 “피해자들에게 사기범의 처벌과 피해의 환수 중 어떤 것을 선택하냐고 물어본다면 다른 형사범죄와 달리 대부분 후자를 고른다”며 “형을 줄일 목적으로 채권자에게 채무를 일부 변제해 준다고 하면 피해자들이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액을 돌려받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형사처벌을 받은 사기범들의 재산이 발견될 경우 다시 소송을 통해 이를 찾는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의자 명의로 된 부동산 등 재산이 있거나 계좌에 돈이 남았을 경우 민사를 통해 자신의 몫을 돌려받는 방법이 있긴 하다”면서도 “피해자들의 돈을 모두 탕진했거나 어딘가에 은닉했을 가능성이 높고, 일부가 남았더라도 피해자가 여럿일 경우 이를 나눠야 하는 만큼 자신의 몫을 돌려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범죄를 통해 얻는 수익이 그로 인해 치르게 되는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속이는 사람이 나쁜 건데 사회는 속은 사람을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며 “신고해도 잡지 못할 범죄가 판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쉽게 돈 벌 수 있어”… 사기범 재범률도 높아
사기범은 재범률이 높은 데다 법의 약점과 빈틈까지 파고드는 치밀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기범의 재범과 기소중지 비율이 유독 높은 것은 범죄자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증권관련 사기범 장모씨를 수사할 때 일화다. 사기 전과를 갖고 있던 장씨는 범행을 반복해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영악했던 장씨는 검사실에서 체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순순히 협조했다.
김 의원은 조사를 마친 뒤 장씨에게 곧 구속될 거라고 미리 알려줬다. 귀가했던 장씨는 조사를 마친 날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변호사를 통해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 김 의원이 확인해 본 결과 장씨는 119에 미리 자살을 예고한 뒤 문을 열어 놨고, 장씨가 마신 농약도 중독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김 의원은 “그렇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장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결국 장씨는 불구속 상태로 기소됐다.
현직 부장검사는 “사기꾼의 경우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났다고 생각되면 위기를 직감하고 도주해버리고 그 이후에야 구속 전 피의자심문 기일에 출석 통보가 전달된다”며 “그렇다고 조사 없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도주 확률을 낮출 수 있지만 이 경우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장을 청구하기 어렵고, 청구한다고 해도 기각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기범 신병을 확보해도 이들은 피해자와 외상합의한 뒤 구속적부심을 신청하거나, 구속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다”며 “항소심에서 관록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 풀려나거나 집행유예로 형이 줄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범의 유혹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한 차장검사는 “쉽게 목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며 “과거에 쉽게 벌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필재·안병수·김청윤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