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이빨과 혀를 있는 힘껏 드러낸다. 성난 눈빛을 하고 발톱을 세운다. 꼬리 끝까지 단단하게 느껴지는 몸체를 가진 호랑이가 절벽 위에서 “어흥” 포효한다.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서화가 황종하의 호랑이 그림 옆에 쓰인 화제는 ‘맹호일성백수병식(猛虎一聲百獸屛息)’. ‘맹호 한번 울부짖음에 뭇 짐승들 숨을 죽인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때, 호랑이 그림이 용기를 준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씨에서 지난 7일 ‘호랑이는 살아있다’전이 시작됐다. 황종하를 비롯해 김기창, 서정묵, 유삼규, 백남준, 오윤, 이은실, 이영주, 한주예슬, 제시카 세갈, 필립 워널의 호랑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코리아나 화장 박물관 소장 유물과 코리아나 미술관 소장 미술품 등 회화와 판화, 병풍, 영상, 설치 등 38점이다. 서지은 큐레이터는 “박물관과 미술관 소장품을 동시에 엮어낼 수 있는 소재로 전시 기획을 고민하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로 호랑이를 찾아낸 것인데, 마침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를 만났다”며 “고난의 시기마다 한민족이 호출했던 상징이 호랑이였다는 점에서 절묘하게 주제의식도 맞아떨어졌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 기획대로 한민족은 호랑이를 불러내고 의지했다. 일제가 한반도를 풀 뜯는 토끼 모양으로 그릴 때, 우리는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를 그렸다. 민주화를 쟁취한 뒤 1988년 첫 올림픽의 기쁨을 호돌이·호순이와 나눴다. 전시 초반부에는 이처럼 민족 역사와 함께했던 호랑이를 소개한다. 이전 한국 미술 작품 속 호랑이는 입을 다물고 근엄한 군주처럼 그려지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두려움 없이 포효하고 금방이라도 용맹하게 덮칠 것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가졌던 호랑이는 가마 덮개에 그려져 신행 가는 신부를 지키기도 했고, 조선시대 관리들의 흉배에 그려져 나라를 지키기도 했다. 민중의 수호신이기도 했던 호랑이는 민화 속에서 든든하면서도 따뜻한 친구처럼 익살스럽게 그려지기도 했다. 오윤의 ‘무호도’, 김기창의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이 바로 그런 그림이다.
전시는 전통적인 호랑이를 보여주는 전반부와 현대의 호랑이를 보여주는 후반부로 나뉘어 둘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가로 폭 5m에 달하는 대형 작품인 이은실의 ‘삶의 풍경’에서는 깊이감을 더하는 어두운 배경과 대비된 호랑이 털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정수리부터 등을 타고 꼬리 끝까지 뻗은 곡선은 강하면서도 유려하다. 과거와 현재 화가들 모두 깨끗하게 빛나 더욱 영험해 보이는 호랑이 털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 것이 흥미롭다.
전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려는 시도로 꼼꼼하다. 전시 때마다 빠지지 않고 열었던 전시 연계 프로그램인 대형 강의를 과감하게 없앴다. 대신 소규모 집단으로 관람객을 나눠 연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이 함께하는 감상 프로그램인 ‘키즈 앤 패밀리 감상투어’, 바쁜 일상에서 퇴근한 성인을 위한 프라이빗 프로그램 ‘애프터 워크 살롱’ 등이다. 모두 10명 내 인원으로 여러 회차에 나눠 진행한다. 거리두기의 시대가 그래도 허전하다면 스마트폰을 들면 된다.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전시장 곳곳에 그려진 큐아르(QR) 코드를 찍으면, 살아 움직이는 듯한 3D 호랑이 이미지가 화면에 자동으로 떠올라 관람객이 서 있는 전시장 곳곳에 출몰한다. 가상의 호랑이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이색 체험이다. 12월19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