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에도 상담할 것”… 아베, 스가 내각 ‘상왕’ 되나

스가, ‘아베 노선 계승’ 약속한 데 이어
“퇴임 후에도 협력 구하겠다” 공언까지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왼쪽)이 아베 신조 총리(가운데)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 새 총리로 선출될 것이 확실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총리가 된 뒤에도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협력을 구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보도한 내용 일부다. 아베 내각의 일원이기도 한 스가 장관이 아베 총리의 각종 정책을 충실히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것은 사실이나, 아베 총리가 퇴임한 후에도 계속 전임자한테 조언을 구할 뜻을 내비쳤다는 점은 다소 뜻밖이다. 아베 총리가 앞으로 출범할 스각 내각을 상대로 ‘상왕’ 노릇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는 대목이다.

 

◆‘일본,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돼야 한다’는 생각 확고

 

13일 일본 정치권에 따르면 요미우리신문의 이같은 보도는 전날(12일) 일본기자클럽 주최로 열린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 스가 장관이 내놓은 발언 때문이다. 스가 장관은 향후 총리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아베 총리와) 상담하면서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비록 ‘외교안보’ 분야에 국한해서 한 말이긴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직면한 굵직한 현안 거의 대부분이 외교안보 관련 사안이란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출범할 스가 내각은 ‘포스트 아베’ 정권이라기보다는 ‘아베 정권의 연장’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더 옳을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스가 장관은 이미 여러 차례 ‘아베 정권의 정책 노선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지난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정견발표회에서 스가 장관은 헌법 개정에 관해 “자민당 창당 이래 당시(黨是·당의 기본방침)”라며 “확실히 (개헌에) 도전해 가겠다”고 말했다. 군대 보유를 금지해 흔히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 일본 헌법 9조를 고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셈이다.

 

외교 노선에 있어서도 “(일본 정부는) 일·미 동맹을 기축으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며 “국익을 지키기 위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전략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근린 국가와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아베 정권 시절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일본 차기 총리 선출이 확실시되는 스가 요시히데 현 관방장관. 연합뉴스

◆한국, ‘관계 개선’ 희망했지만… 대답 없는 일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란 미국에서 자국의 대(對)중국 전략 구상을 설명할 때 늘 쓰는 표현이다. 태평양의 일부인 남중국해를 공해가 아닌 중국의 영해처럼 만들려는 중국의 야심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미국과 호주, 일본, 인도 등이 한데 뭉쳐야 한다는 의미다. 지도상에서 보면 마치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포위망’을 형성하는 듯한 모습이다.

 

비록 중국과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안정적 관계란 현상유지, 곧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속도를 내거나 하진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960년대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인 한국과의 관계에 관해 스가 장관은 아직 어떤 비전을 내놓은 바 없다. 다만 ‘아베 정권을 충실히 계승하겠다’는 그의 공언과 결부지어 분석하면 지난해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취한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를 푸는 등 한·일관계 개선에 나설 의사가 당분간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건강 악화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아베 총리의 쾌유를 기원하면서 ‘일본 새 내각과 관계 개선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아직까지 아무런 답이 없는 게 현실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