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자 겸 친구 누구는 술에 취하면 늘 군대 얘기다. 취기가 오르면 총번이 어쩌고 전투 가늠자가 어쩌고 하면서 군대 얘기를 끄집어낸다. 그러다가 결국엔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으로 시작해 “부모 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로 끝난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목청이 터지라고 외쳤던 군가, ‘진짜 사나이’다. 아무리 군대 얘기 그만하라고 해도 취하면 늘 그렇다. “혹시 방위 출신이 괜히 그러는 것 아니냐”고 놀리면 안 된다. 곧바로 거친 싸움이 된다. 핏발 선 얼굴로 최전방, 그것도 기갑부대에서 쇠파이프로 맞으며 고생했던 신산한 군 생활을 토해내고 우리는 곧 숙연해진다. 이게 대한민국 중·장년세대의 군에 관한 추억이다.
1980년대 군에 갔다 온 사람은 다 안다. 그 얼마나 가혹하고 비인간적이었는지를, 휴가가 끝날 무렵 귀대 일이 다가오면 탈영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본 기성세대는 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귀대는 오후 5시, 하지만 먹거리를 사 들고 대개 점심 때 들어간다. 시간에 맞춰 귀대하면 군기가 빠졌다고 막사 뒤 공터 집합이다. 집합이란 말은 곧 곡괭이 자루 구타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쓰라린 군 생활을 떠올리면 지금도 자기연민에 울컥해진다. 고단한 이등병 시절, 권력자를 지인으로 둔 전입 동기가 ‘따불 백’을 메고 서울로 가면서 “미안하다” 했다. 군에서도 바깥 정치권력이 얼마나 위력을 떨치는지를 뼈저리게 느낀 그날 밤, 나는 서러움과 자학 속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시절 군대는 그야말로 “SSKK”,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야 했다”. 고된 하루가 끝나면 군과는 전혀 무관한 엉뚱한 임무가 떨어졌다. 중대장 리포터를 대신 쓰는 것이다. 그 당시 중대장급 장교들은 대개 인근 대학의 야간석사과정에 다녔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전공도 무관한 리포트 써준다고 밤잠을 설쳤다. 대학물 먹은 게 죄였을까? 어느 날 무시무시한 보안부대의 지시에 따라 매일 밤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영어로 편지를 써야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을 호소하는 편지다. 물론 착한 어떤 민간인처럼 썼다. 이쯤 되면 기성세대의 군 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평소 말이 없던 남자도 군대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많다. 같은 내무반 전우가 소총으로 자해하던 모습을 지켜본 끔찍한 경험도 있다. 분실된 총기를 찾으려고 전 부대 화장실 인분을 인근 논밭에 늘어놓고 대검으로 찌르며 찾던 일이 어제 같다. 물론 총기분실 사고가 발생한 그해 반년간 휴가는 물론이고 외출, 외박까지 금지됐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