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준비하시고 하나, 둘, 셋 하면 건배하는 겁니다.”
회사원 박은지(34)씨와 5명의 친구들은 지난 주말 노트북 앞에 앉아 건배사를 외쳤다. 서울과 대전, 경북 안동과 포항 등 전국 각지에 떨어져 사는 15년 지기 친구들은 1년에 두세 번씩 지역을 정해 만났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약속을 미루고 있었지만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짜낸 묘안이 ‘랜선 회식’이었다. 랜선은 네트워크 연결을 위한 유선 케이블인 랜(LAN)과 선(線)의 합성어로 비대면·온라인을 뜻한다.
최근에는 자신이 구매한 물건을 ‘플렉스’(과시하거나 자랑하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박은지씨와 친구들도 각자의 근황을 주로 전했던 지난 회식과 달리 다음부터는 주제가 생긴다. ‘홈트’(홈트레이닝·재택운동)가 주제인 다음 회식에는 다 같이 운동복 차림으로 ‘랜선 운동’도 하기로 했다.
랜선 회식을 경험한 이들은 주로 개인 취향이 존중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각자 원하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며 술을 마시거나 ‘n차’ 회식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첫 랜선 회식을 했다는 직장인 정모(27)씨는 “업무 특성상 야근과 회식이 잦았는데 (랜선 회식은) 확실히 부담이 작았다. 아직 막내급인데 적당히 마실 수 있고 끝나고도 바로 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랜선 회식이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회식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부터 회식 문화에 대한 변화 요구가 지속돼 왔다”며 “9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과 맞물려 비대면 방식의 회식이 직장인, 취업준비생, 학생을 막론하고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그간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 성희롱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도 적합하다”고 부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