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14일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예상대로 압승을 거두면서 16일 총리 선출을 예약했다.
스가 총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승계를 표방하고 있어 신정권이 출범해도 한·일 관계의 돌파구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스가 총재는 최근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965년) 일한청구권협정이 일·한 관계의 기본이다. (한국과의 외교가) 그것(청구권협정)에 확실히 구속되는 것은 당연하다”라든지 “국제법 위반에 철저히 대응해 나가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는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을 둘러싼 한·일 대립과 관련해 아베 정권의 완강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가 총재는 지난 12일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도 아베 총리의 외교 수완을 칭송한 뒤 “(외교 면에선 아베 총리와) 상담하면서 가겠다. 외교는 계속성이 중요하다”고 아베 노선 승계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치야마 유(內山融)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지지 기반은 보수층인데 이번에 지지 기반이 교체되는 것이 아니다”며 “스가 정권에서도 보수적인, 우파적인 외교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스가 총리가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 내 최다 파벌과 2위 파벌인 아소 다로(麻生太郞)파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좌에 오른다는 점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했던 양대 파벌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아베의 그림자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기 때문에 한·일관계의 변화는 어렵고 스가 정권에서 한·일 관계는 우선순위에서 낮아 관계 개선에 적극적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한국에 볼이 있다고 보고 있어 한국의 태도를 관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의 리더십이 바뀌니만큼 11월 미국 대선 결과 등을 보면서 한·일 정부가 관계 개선을 탐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도 반목했던 아베 총리가 물러나니 양측의 외교 공간이 넓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양국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해결책 접근이 모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스가 총재가 워낙 균형 감각이 뛰어나 아베 총리의 외교를 이어간다고는 하나 아베 총리처럼 한·일 관계가 긴장돼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11월 미국 대선 후 한·미와 미·일 관계가 안정된 뒤 한·중·일 정상회의를 고리로 관계 개선이 모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도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한국에 대한 정책의 일부 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가 변수이나 정부는 올해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연내 정상회의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3국 정상회의가 성사되면 관례에 따라 양자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니 문 대통령과 스가 차기 총리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홍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