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 등록 안 된 계좌로 43억 모금… 치매할머니도 속였다”

검찰이 밝힌 ‘정의연 의혹’
개인계좌 1억7000만원·단체는 41억
‘심신장애’ 앓는 길원옥 할머니 이용
정의연에 상금 5000만원 기부시켜
학예사 허위 등록해 3억 부정 수령
尹 “모금액 사적 유용 없었다” 부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기부금 횡령 의혹 등에 관해 전직 이사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윤 의원이 3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부정수급하고, 기부금과 공금 1억원 이상을 횡령했다는 수사 결과가 재판에서 사실로 판명된다면 윤 의원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윤 의원을 옹호했던 정치권이나 정의연도 도덕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기소 내용 중 윤 의원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윤 의원이 치매를 앓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정의연에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한 혐의(준사기)다. 준사기는 다른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검찰은 윤 의원이 숨진 마포 소장과 공모해 중증 치매를 앓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의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 중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당시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상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상금을 기부했다”면서 “해당 할머니의 정신적·육체적 주체성을 무시하며 ‘위안부’ 피해자를 또 욕보인 주장에 검찰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가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신청해 등록하는 수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3억여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혐의를 받는다. 윤 의원은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 등에 인건비 보조금을 신청해 7개 사업에서 총 6500여만원을 부정 수령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윤 의원 등은 관할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단체 계좌로 정대협과 전쟁과인권박물관 관련 27억여원, 정의연 관련 13억여원, ‘김복동의 희망’ 관련 약 1억원 등 총 41억여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했다. 또 윤 의원은 해외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 명목으로 약 4000만원과 지난해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으로 1억3000만원 등 1억7000만원의 기부금품을 개인 계좌로 모금한 혐의(기부금품법 위반)도 받는다.

 

검찰은 또 윤 의원이 개인 계좌를 이용해 모금하거나 정대협 경상비 등 법인 계좌에서 이체받아 2011년부터 올해까지 임의로 쓴 돈은 1억여원인 것으로 파악했다. 윤 의원은 “모금된 돈은 모두 공적인 용도로 사용됐고 윤미향 개인이 사적으로 유용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의연·정대협의 부실 회계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가 성립되지 않다고 보고 기소하지 않았다. 공시 누락 등 부실공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돼 있었고 지출에도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검찰은 또 정의연·정대협은 ‘공익법인법’상 공익법인으로 설립돼 있지 않으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의 공익법인으로 세제 혜택 등을 받고 있어 감독관청 보고나 공시에 부실한 점이 상당했음에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현행법상 국세청 홈택스 허위공시나 누락에 대해 처벌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논란이 됐던 윤 의원 가족 관련 의혹은 불기소처분됐다. 검찰은 연수입 5000여만원을 신고한 윤 의원 부부가 정의연·정대협의 자금을 유용해 수억원의 딸 유학비를 지출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 가계 수입은 부부의 신고된 연수입보다 많았다”면서 “약 3억원에 달하는 유학자금은 윤 의원 부부 및 친·인척의 자금, 윤 의원 배우자의 형사보상금 등으로 대부분 충당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이밖에도 윤 의원이 정의연·정대협 자금을 유용해 부동산을 샀다거나 윤 의원 배우자가 운영하는 신문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 윤 의원 부친을 안성 쉼터 관리자로 형식상 올리고 7500여만원을 지급했다는 의혹 등은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기소된 윤 의원과 정대협 상임이사이자 정의연 이사인 A(45)씨를 제외한 정대협 이사 10여명과 정의연 전·현직 이사 22명 등 단체 관계자들은 범행 가담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혐의없음’ 처분하고, 가담 정도가 중하지 않은 회계 담당자 등 실무자 2명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