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맞서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파는 대신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당장 증여세를 물더라도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이 될 집을 마련해 주려는 것이다. ‘흙수저’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켜 사회 통합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증여를 줄이려면 한시적 양도세 인하 등으로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 급증 다주택자, 매매 대신 증여 선택
강남역 인근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집을 가지고 있어도 세금을 내고, 집을 팔아도 세금을 내는 상황이라 집을 팔려고 내놨다가 차라리 증여하겠다며 거둬들이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며 “갭투자 부담감이 커져서 전세를 끼고 있는 아파트가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증여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세와 대출이 끼어 있는 매물은 매매할 때는 천덕꾸러기지만, 증여할 때는 부채를 함께 넘기는 부담부증여로 오히려 세금을 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7·10 대책 이후 강남 일부 중개업소에서는 증여를 원하는 고객들을 알음알음 모집해 법인을 설립한 증여나 제3자 간 교차증여를 알선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편법 증여와 탈세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 병원장 A씨는 20대 초반 자녀 명의의 광고대행·부동산법인을 세운 뒤 자신의 병원에 대한 광고 대행료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지급했다. 자녀는 A씨가 사실상 편법으로 증여한 이 자금을 이용해 부동산법인 명의로 서울 강남의 20억원대 고가 아파트를 취득해 거주 중이다.
부동산매매업을 하는 여성 B씨는 수도권 소재 토지를 매입해 상가 2동을 신축하고, 각 건물 지분의 절반을 초등학생 자녀와 미취학 자녀 명의로 등기했다. 미성년 자녀들이 내야 할 취득세는 A씨가 대신 냈다. 이는 변칙 증여다.
◆“증여가 사회 통합 해칠 수도”, “다주택자 퇴로 열어줘야”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인하해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다주택자가 매물로 내놔야 거래가 활성화되고 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도세 중과 면제는 지난 6월 말에 종료됐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현재 증여세율이 결코 낮은 편이 아닌데도 증여를 한다는 것은 출구가 없다는 얘기”라며 “양도세를 줄이는 게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봤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강남을 대체할 다른 것을 만들든지 아니면 강남에 40~50층 아파트를 지어 공급을 확 늘려야 한다. 1990년대 초반에 분당에 아파트를 지었을 때 강남 가격이 떨어진 것과 같이 ‘분당효과’를 노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증여가 늘어나게 되면) ‘나는 그렇지 못한데 같은 연령의 저들은 왜 저렇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얻게 되는데 이런 종류의 상대적 박탈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부의 분배가 균등하게 이뤄지는 사회 측면에서 부의 대물림을 통한 부익부 빈익빈이 강화되는 측면은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우상규 기자, 박세준·김희원·이희진 기자 skw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