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은 6·25전쟁에서 가장 큰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에 3일 만에 서울을 점령당하고, 후퇴를 거듭하던 한국군은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8일 서울을 다시 수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현재의 동해안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동해안에서도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을 교란하고 전력을 분산시키는 작전을 선택했다. 동해안에서 상륙작전 지역으로 선정된 곳이 바로 장사리였다. 장사리에는 원래 미군이 가기로 되었다가, 경상도 지역의 학도의용군을 주로 모집하여 이곳으로 가게 하였다. 대부분 16세에서 19세까지의 어린 병사들이었다. 문산호에 탑승한 학도의용군들은 태풍까지 겹쳐 배가 좌초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장사리에 상륙하여 북한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뒤늦게 구조선이 도착했지만, 북한군의 포격 속에 다수의 병사가 희생되었고, 그나마 구조선도 빨리 떠나면서 상당수는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