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클 고양이들의 밤이 서울에서 다시 시작됐다. 2017년 여덟 번째 내한공연 이후 3년 만이다. 그 사이 제작비 9500만달러가 투입된 영화판 ‘캣츠’가 공백을 채우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혁명 속 인간 군상이 주인공인 ‘레미제라블’처럼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한 뮤지컬은 여럿이지만 젤리클 고양이 매력을 스크린에 담는 건 무리였고 흥행은 참사로 끝났다.
‘목숨이 아홉개’라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뮤지컬 ‘캣츠’ 내한은 아홉 번째다. 세계 초연 40주년 기념 특별공연으로 그간 ‘캣츠’ 무대에 오른 여러 배우 중 베스트 출연진이 꾸려졌다. 남다른 역사를 자랑하는 작품답게 딸이 엄마 역을 물려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맹위를 떨치면서 글로벌 빅 뮤지컬로는 무대가 열리는 유일한 작품이다.
초연 40주년 기념무대로서 ‘캣츠’의 오랜 매력은 더욱 또렷해졌다. 특히 단 두세 차례 출연하지만 불후의 명곡 ‘메모리’로 무대를 장악하는 주인공 그리자벨라가 새로워졌다. 1993년 17세 나이로 미스 사이공 주인공 킴을 맡으며 단숨에 대형 뮤지컬 주인공으로 데뷔한 조아나 암필이 우리나라 무대에 처음 섰다. 30년간 주요 뮤지컬에서 활약한 슈퍼 디바답게 이전과 다른 느낌의 그리자벨라를 보여준다.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 초라하고 외로운 신세이나 자존심과 긍지를 잃지 않은 강인한 모습이 도드라진다. ‘캣츠’의 절정인 2막 마지막 ‘메모리’를 부르는 대목에선 극장 지붕을 뚫을 듯한 폭발적 성량으로 객석 기대를 만족하게 한다.
이 밖에도 선 굵은 줄거리 없이 다양한 고양이 이야기가 오밀조밀한 ‘캣츠’는 볼 때마다 감동 포인트가 다른 작품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막오른 이번 공연에선 ‘새로운 날’을 소원하며 2막을 여는 장면이 객석에 각별하게 다가온다. 어린 고양이 제마이마가 여리나 또렷한 우리말로 “밤하늘 달빛을 바라봐요. 아름다운 추억에 마음을 열어요.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새로운 날 올 거야”라고 짤막하게 ‘메모리’를 부르는 순간 예상치 못한 뭉클함이 가슴속에서 일어난다. 왜일까. 아홉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신비한 고양이 올드 듀터로노미는 제마이마 노래에 앞서 자신이 이끄는 고양이들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우리는 행복의 순간을 경험하지만 그 의미는 깨닫지 못하죠. 다시 행복을 되찾고 싶다면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해요. 여러 삶의 모습 너머에 있는 서로 다른 형태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요. 의미 안에서 되살아난 과거의 경험은 단지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닌 많은 이들의 추억을 담고 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이죠.(캣츠 중 행복의 순간들)” 모두의 일상이 위협받는 코로나 시대에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추억하자는 고양이들의 노래는 큰 울림과 감동을 준다.
여러 번을 봐도 새로운 ‘캣츠’의 매력은 이번 시즌에서도 빛나는데 이는 드미터, 알론조, 카산드라, 거스, 럼 텀 터거 등 개성 만점 고양이들 활약 덕분. 이번 무대에선 야간우편열차 차장인 스킴블샹스와 젊은 날을 회상하는 극장 문지기 거스, 그리고 악당 매커버티가 쌓은 악명을 노래하는 드미터와 봄발루리나 노래가 세계 정상급 무대 수준을 입증한다. 호주에서 정통 발레를 전공하다 ‘캣츠’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의 춤솜씨도 큰 갈채를 받을 만하다. 서울 샤롯데 씨어터에서 9월 9일부터 11월 8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