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바이든,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 두고 대선 전초전

‘진보의 아이콘’ 사망에 쟁점 부상
트럼프 “다음주 후보지명” 속도 내자
공화 다수인 상원서도 “표결” 힘 실어
美 대법관 인준까지 평균 69일 소요돼
대선 44일 남아… 시간상 쉽지 않을 듯
후임 지명논란 누가 더 유리할까 11월 대선에서 맞붙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18일(현지시간) 타계한 ‘진보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을 누가 지명할 것인지를 놓고 격돌했다. 왼쪽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엣빌에서 유세하는 장면. 오른쪽은 바이든 후보가 지난 15일 플로리다주 키시미에서 연설하는 모습. 페이엣빌·키시미=AP연합뉴스

미국 ‘진보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지난 18일(현지시간) 87세로 타계하면서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6주 남은 미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미 언론과 정치권은 몇 년째 긴즈버그 대법관의 건강에 관심을 쏟아왔다.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9명의 이념 구성비 때문인데, 긴즈버그 생전에 보수5 대 진보4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 번째 대법관 지명기회를 관철하면 균형추는 보수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다. CNN은 긴즈버그는 암 투병 중에도 건강관리에 철저했다며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긴즈버그 대법관은 올해 다섯 번째 항암치료 중에도 “사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지난달 지인 가족의 결혼식에 주례로 나서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긴즈버그가 타계하자 대선 전에 후임 인선을 마무리하겠다고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다음 주에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면서 여성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전날 “긴즈버그 후임 지명자에 대해 상원이 투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후임 인선을 관철하려는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편투표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우편투표 집계과정에 논란이 생길 경우 재검표 여부 등을 대법원이 판단하게 되는데, 이를 의식해 ‘보수’ 대법관을 앉히려 한다는 것이다. 우편투표가 증가하면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해 왔다.

 

백악관 안팎에서는 보수 성향 여성인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가 유력한 후임자로 거론된다. 노터데임대 로스쿨 교직원이기도 한 배럿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브랫 캐버노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할 때 마지막까지 후보군에 있었던 인물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배럿 판사는 대표적인 낙태 반대론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배럿 판사를 긴즈버그 후임 자리를 위해 아껴두고 있다”고 말했다고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지난해 3월 보도했다.

 

에이미 코니

민주당은 반발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위터에서 “미국인들은 다음 대법관 선택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빈자리는 새 대통령이 나오기 전까지 채워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다음 대법관은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선임해야 한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선거 전 인준을 밀어붙이더라도 대선까지 불과 44일 남은 상황에서 시간상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 지명과 청문회, 상원 표결 등 판사 인준에 평균 69일이 걸렸다. 공화당이 상원 인준에 필요한 과반(51석)인 53석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리사 머코스키와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이 대선 전 인준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만큼 이탈표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앞서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별세하자 후임으로 메릭 갈랜드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지만 당시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반대로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지명한 닐 고서치가 대법관이 됐다. 4년 만에 상황이 역전됐지만 여전히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다.

한편 NYT에 따르면 지난 10∼16일 메인·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차기 대법관을 선택하기를 바란다’는 답변이 53%로 과반을 차지했다. ‘트럼프가 임명하기를 바란다’는 답변은 41%였다.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가 지난 7∼10일 유권자 1191명을 대상으로 ‘누가 대법관 지명을 더 잘할 것이라고 신뢰하느냐’고 물어본 결과에서도 바이든 후보라는 응답이 52%로 트럼프 대통령(45%)을 앞섰다. NYT는 후임 대법관 지명논란이 바이든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대법관 후임 지명을 강행하면서 민주당 유권자들을 결집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