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많이 외로웠습니다. 아무도 곁에서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죠. 사랑했던 아내조차도 그를 배신해 떠났고, 같은 부류(살인마)일 것이라고 생각해 잘 대해 줬던 아들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상담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백희성이 같은 부류였죠. 그래서 그를 (공범으로) 선택합니다.”
수목 안방극장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tvN ‘악의 꽃’은 연쇄살인마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드라마는 연쇄살인마로 의심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수사해야 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준기와 문채원이 각각 남편 도현수와 아내 차지원 역을 맡았다.
최병모가 연기한 도민석은 과거에 죽은 사람이다. 하지만 도현수의 환상으로 드라마 곳곳에서 다시 등장한다. 대사도 없이 짧게 나타날 뿐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느 배역 못지않다. 창백한 피부색, 온통 검은 눈동자,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 단발머리, 그리고 왼손에 쥐고 있는 개 목줄. 그가 등장하면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쥔다. 최병모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에서 실제 사형수를 인터뷰한 영상을 많이 참고했다”며 “연기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고는 나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울 때가 가끔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도민석처럼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며 “소심하기도 하고 밝은 성격에 장난기도 많다”고 능청을 떤다. 실제 이날 그는 단발머리에 캐주얼한 의상을 입었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보다는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중년 남성 같았다. 배우들과의 에피소드도 언급했다. 드라마 초반 도현수와 차지원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키스하는데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개 목줄을 든 도민석이 등장한다. 이때가 최병모의 첫 촬영이었는데, 그는 이준기에게 “너희 뽀뽀하는 거 감시하러 왔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최병모는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2003년 연극무대에 올랐다. 방송활동을 시작한 지는 이제 5년가량 됐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아버지부터 경찰, 국회의원에 이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머니게임)과 기자(방법)까지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머니게임과 방법에서도 악역을 맡았는데, 밉상 악역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다 ‘악의 꽃’ 대본을 받았고,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어서 배역의 비중을 떠나 출연부터 하기로 했죠.”
최병모는 대본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쉬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고 들려준다. 마침 서스펜스 장르를 좋아했기 때문에 ‘악의 꽃’이 더욱 와 닿았다. 후속작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영화 ‘압구정리포트’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는 압구정 토박이 대국(마동석)과 성형외과 의사 지우(정경호)가 강남 일대 성형 비즈니스의 전성기를 여는 이야기다. 그는 “이제 (악의 꽃에서의 검은) 렌즈를 빼고 착하게 살아보겠습니다”라며 웃어보였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