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4년 계약직’으로 부른다. 당선되면 4년 임기를 보장받지만 다음 총선에서 낙선하면 실업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특별한 실업자들이다.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출신은 본업으로 돌아간다. 전문직이 아니어도 여당 소속에 정권 실세로부터 미운털을 박히지 않았다면 고위 정무직 한자리를 꿰찬다. 20대 의원 출신이었으나 낙선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를 상대로 입법 로비 등을 벌여야 하는 대기업과 대형 로펌 등도 여야 낙선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취업 대상이다. 기업이나 로펌 입장에서도 국회에 각종 의견을 제시하거나 정부 부처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정치인 출신들이 필요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인력 시장이지만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승인이 필요하다.
◆보좌관 출신도 쓸어가는 기업들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기업행 사례도 부쩍 늘었다. 직전까지 해당 기업과 연관된 상임위 소속 의원실에서 근무하다가 기업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최근 KT는 대관업무 담당 임원으로 여야 출신 전직 보좌관을 각각 영입했다. 국민의힘 여상규 전 의원실 출신의 A 보좌관과, 민주당 소속으로 과방위원장을 지낸 노웅래 의원실 출신의 B 보좌관이다. 20대 국회에서 국토교통위 간사를 지낸 박덕흠(국민의힘) 의원실 출신의 C 보좌관도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대관업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과방위와 국토위는 각각 KT·인국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데도 국회공직자윤리위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회 내부에서조차 국회공직자윤리위 심사는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여당 소속 한 보좌관은 통화에서 “보좌관이 기업에 갈 것을 염두에 두고 의정활동을 보좌하면 제대로 관리 감독이 되지 않는다”며 “국정감사를 할 때 증인을 빼주고 이후 자리로 돌려받는 ‘거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의원·보좌관 출신의 기업 진출을 원천 금지할 수는 없다.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조치가 될 수 있다. 서울고법 행정4-3부(부장판사 이동근)는 D씨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취업제한처분 등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한 1심을 취소하고 지난 6월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직자윤리위가 내린 D씨 취업제한처분은 실체적인 직업선택의 자유 및 권리를 구체적이고 중대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D씨의 퇴직 전 소속 부서 내지 기관과 재취업한 곳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은 업무 처리 건수, 빈도 및 비중 등에 비춰볼 때 인정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해충돌 여부에 관한 국회공직자윤리위의 내실 있는 운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