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탈북민이 수영으로 재입북한 사건이 발생한 인천 강화도 경계를 맡는 해병대 A사단 감시장비가 최근 수년간 수백차례에 걸쳐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23일 드러났다. 특히 경북 포항일대와 서북도서 등 대한민국 해안 경계를 맡는 곳에서도 매년 감시장비 고장이 늘고 있어 경계태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건이 날 때마다 관계자들을 문책하는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감시장비 업그레이드, 운영 능력 제고 등을 통해 최전방 감시공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해병대사령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2016년부터 최근까지 해병대에서 운용하는 열상감시장비(TOD·생물과 물체의 적외선을 감지해 영상으로 변환하는 장비)에서 모두 449건의 고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75건과 2017년 58건에 그쳤지만 2018년 110건, 2019년 126건으로 급증세다.
주요 해병대 부대별로 보면 탈북민이 수영으로 재입북한 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경계를 맡은 해병 A사단에서 일어난 고장은 259건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더구나 2017년 32건에서 2018년 63건, 2019년 68건, 2020년 47건(상반기 기준)으로 TOD 고장 횟수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경북 포항 일대에 주둔하는 해병 B사단의 TOD 고장 횟수가 최근 5년간 61건, 서북도서 방어를 담당하는 C여단과 D부대의 경우 각각 61건, 68건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장은 주로 원격조종장치나 탐지세트인 카메라와 레이저 거리 측정기 등에 의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단순 기기고장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조작 미숙이나 정비 불량 등 관리부실 탓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도, 교동도 등을 포함해 250㎞가 넘는 넓은 해안지역을 지키는 상황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결과라는 반론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넓은 지역을 감시하는 부대 특성상 TOD 수량이나 운용시간 등이 다른 부대보다 많고, 해무 등 기상 여건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즉 육군 3개 사단이 맡아야 할 지역을 1개 사단으로 지키다 보니 감시장비 운용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고, 고장이나 결함도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강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부유물을 감시장비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해무가 발생하는 주변 환경도 감시장비 운영유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강화도 이외 지역에서도 감시장비 고장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실패’ 문제가 재연될 위험은 여전하다. 지난 7월 탈북민 재입북 사건 당시 TOD 영상을 네트워크를 통해 소초에서 서버로 보내는 기능에 오류가 발생했다. 지난 4월 충남 태안 중국인 밀입국 사건에서도 TOD 부품 고장으로 영상이 녹화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장비 고장이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내륙 지역 휴전선 일반전초(GOP)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GOP 경계 시스템 작동 오류 및 고장은 2749건에 달했다. 최전방 기지에서 하루 1.5회꼴로 감시장비가 먹통이 됐다는 의미다. 유형별로는 동물(39.2%)이나 강풍(38.1%)에 의한 광망(철조망 감지센서) 절단이 전체 고장의 77.3%였다. 카메라 및 서버, 전원장치 등 장비 고장도 16%를 차지했다. 경계 시스템의 오작동도 적지 않았다. 철조망 감지센서 작동으로 경보음이 울린 것은 2016년 이후 1만2190회였는데, 시스템 오류로 인한 오작동이 27%에 달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