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폄하됐거나 부인됐던 ‘여자들의 우정’을 파헤치고 분석한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80대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과 100여 차례 인터뷰했고 역사 속, 또는 영화나 드라마 속 여성들의 우정을 살폈다. 여성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과 사회학적 분석도 했다. 여기에 자신의 솔직한 경험을 반영했다. 결국 연예도 결혼도 채울 수 없는 여자들만의 우정을 책 전반에서 예찬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은 여성 간 우정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여성 사이에 다툼이 생겨나면 으슥한 탕비실에서 혹은 술집에서 이런 말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여자는 애인이 생기면 잠수 탄다’, ‘여자 상사는 여자 직원을 더 괴롭힌다’ 같은 말들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누군가는 이런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기도 한다. 여성의 진정한 관계는 남자와만 이뤄진다는 인식은 영화에서도 흔하게 등장한다.
처음 ‘못된 여자애들’이란 편견에 ‘관계적 공격성’이란 낙인을 찍은 것은 1990년대 핀란드의 카이 비외르크비스트 교수팀이 행한 연구다. 관계적 공격성은 누군가의 명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은밀하게 깎아내리는 간접적 공격을 말한다. 그 연구의 결론은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처럼 일종의 공격성을 보이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못된 여자애들’이라는 개념이 1990년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더구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아래서 결혼한 여성은 가족에게 헌신하는 것 외에 아무런 관계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의 우정은 더 낯선 것이 되고, 여기에 편견들이 더해져 여자의 우정은 계속 폄하될 수밖에 없었다.
책은 여성들이 헤어질 때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라고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 말은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에 대한 염려, 혼자 남았을 때 느끼는 불안감, 친구들을 만난 후 느끼는 행복감과 조바심을 모두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에게 우정은 연대감이자 여성으로 세상 앞에서 경험하는 끈질긴 두려움을 이겨내는 응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에게도 다양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까지 여성들 일상은 대부분 남편이나 자녀 위주로 채워졌다.
하지만 가족에게 모든 인간관계를 바치는 방식은 이제 힘을 잃고 있다고 설명한다. 더는 여성이 배우자만을 바라보고 사는 세상이 아니다. 1인 가구를 비롯한 생활 양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여러 성격의 인간관계를 한 사람에게만 부여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때 여성들이 되찾아야 할 건 우정이다. 세상이 수많은 편견으로 방해했던 여성의 우정을 관계의 우선순위에 두고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며, 여성들의 우정은 그 무엇보다 견고하다고 설명한다. 오랫동안 폄하됐던 여성들의 우정만으로 관계의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