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7일 새벽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친환경 유기농 콩나물 생산공장.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새카맣게 타버린 콩나물 원두가 사방에 나뒹굴었다. 건물 내부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제 구조물에서 불길의 위력이 짐작됐다. 연면적 1100㎡ 규모 2층짜리 공장은 그날 화재로 다 타버렸다. 50여명의 발달장애인 공동체 ‘우리마을’이 운영하던 것이었다. 20여년 전부터 공동체 살림을 책임져온 터전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렸다. 구성원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심경이었다.
화재 진압에 나섰던 인천소방본부 대원들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었다. 다양한 화재·구조 현장에 출동했던 서영재 소방위도 그랬다. 그는 “촌각을 다투는 사고 현장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며 “소방서로 복귀하고 나면 안타까운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고, 어떤 때는 눈물도 하염없이 흐른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인천소방본부 직원 1000여명이 동참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관내 어린이집과 은행, 기업체 등은 물론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동참 문의가 빗발쳤다. 정말 기적처럼 1년 만에 3900명가량이 참여해 1억3000만원 넘게 모금했다.
성금이 처음 전달된 곳은 강화도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이다. 화재 피해 복구비로 1000만원을 건넸다.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계양구의 한부모가정에는 올 새해 첫날부터 불이 나 끔찍한 상황을 맞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당장 갈 곳도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생계비 등 명목으로 300만원을 전달하고 위로했다.
이처럼 한 사람의 119원은 푼돈일지 몰라도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쌓아 올린 119원은 힘겨운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화재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해 부자가 중증으로 투병 중인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뇌전증(간질)을 앓아 자주 구급차를 타야 했던 초등학생, 에스컬레이터 정비 도중 손을 다친 근로자 등 지금까지 17가정에 5600여만원이 지원됐다. 얼마 전 인천 미추홀구의 빌라에서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끼니를 때우려고 라면을 끓이다 난 불로 크게 다친 초등생 형제에게도 화상 치료비를 지급했다. 지역사회에서도 ‘행복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길 바라는 시민들이 119원의 기적에 힘을 보탰다. ‘119원의 기적 커피’를 선보인 연수구의 한 커피전문점이 대표적이다. 커피 판매로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한 잔에 119원씩 정기적으로 적립해 기부한다.
인천소방본부는 현장 소방관들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던 기부금 지원 대상자도 앞으로 더 확대하고, 여건이 되면 어린이 화상환자 정기후원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상담 등에도 나설 예정이다.
김영중 인천 소방본부장은 “119원의 기적 프로젝트가 시민들의 관심 속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추석 연휴에도 재난으로 고통받고 소외되는 이웃이 없기를 바라고 빈틈없는 소방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인천=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