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세계 한인의 날’을 맞아 정세균 국무총리가 한국계 미국인 ‘전쟁 영웅’ 김영옥(1919∼2005) 전 미 육군 대령의 업적을 기려 눈길을 끈다. 김 대령은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혈통만큼은 ‘100% 한국인’이다.
정 총리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세계 한인의 날’ 기념사를 올렸다. ‘세계 한인의 날’은 750만 재외동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한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처음 만들어졌다. 원래 국내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가져왔으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재외동포 대표들이 한국에 모여서 하는 기념식은 생략됐다.
정 총리는 기념사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고속도로에는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라 불리는 구간이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한 전쟁 영웅 고 김영옥 대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도로명으로 명명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김영옥 대령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 이민 1세대로, 재외동포 여러분의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제2의 김영옥, 제3의 김영옥으로 활약하고 계실 재외동포 여러분을 떠올리며, 오늘 ‘세계 한인의 날’에 특별히 여러분을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령은 미 육군 장교로 2차 대전과 6·25 전쟁에서 나란히 커다란 전공을 세운 영웅 중의 영웅이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복무한 그는 특히 미 육군 마크 클라크 장군 휘하 제5군 소속으로 1944년 6월 독일군 점령 하에 있던 로마 해방에 혁혁히 기여했다. 훗날 클라크 장군은 “내 휘하에 있던 50만 군인 중 최고의 군인”이라고 김 대령을 극찬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잠시 군을 떠났던 김 대령은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육군에 복귀한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평생 미국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은 남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그는 ‘부모의 나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전을 결심했다. 당시만 해도 미군에는 인종차별 관행이 남아 있었으나 김 대령은 뛰어난 전술·전략만으로 백인들을 이끄는 미군 최초 유색인종 대대장이 됐다.
정전협정 체결 후 그는 미군 군사고문단 일원으로 한국에 남아 한국군 현대화에 힘썼다. 이런 보직은 진급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김 대령도 장군 진급을 못한 채 1972년 대령을 끝으로 전역했다. 이후 한미연합회(KAC), 한미박물관(KAM) 등 단체에서 활동하며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는 일에 앞장섰다.
김 대령이 타계하고 13년이 지난 2018년 그의 고향인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내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 ‘김영옥’이란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미국에 한인의 성명을 딴 고속도로가 생긴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미국 내 한인들이 큰 자부심을 느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