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이 작고 길들이기 쉬운 아이들을 굴뚝이나 비좁은 갱도 등에 넣고 노동을 착취했던 19세기 산업혁명의 그림자는 눈부신 발전의 부끄러운 이면이었다. 이 어두운 역사가 21세기에도 반복될 조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덮친 올 한 해,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나라들에선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노동 현장으로 떠밀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명 가까운 아동들이 교육 기회 박탈은 물론 노동권 침해, 강제 조혼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학교 폐쇄에 거리 내몰린 아이들
◆이른 나이에 일터로… 노동환경은 악화일로
코로나19 이전에도 빈국 아동 4명 중 1명이 학교 대신 노동 현장으로 보내졌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이 같은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선진국이 원격 수업의 효과를 논하는 동안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이다. 열 살 남짓의 아이들이 모래를 채굴하고, 잡초를 베고, 사창가에서 음료를 팔거나 거리에서 구걸을 한다.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2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7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아시아 9개국 1만4000가구 가운데 3분의 1이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나 소득을 잃었다. 이들 가정의 60%는 일용직에 의존하고 있으며, 25%는 식량 여유분이 없다고 답했다.
캄보디아에서는 부모들이 실직한 가구의 28%가 자녀를 노동 현장에 내보내고 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34%가 자녀에게 구걸을 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조사 대상 아동의 28%가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으며, 7%는 이미 버림받은 상태였다.
유니세프는 지난달 15일 세계보건기구(WHO) 회의에서 “학교에서 내몰린 아이들의 상당수가 값싼 노동에 희생되고 있다”며 “앞으로 2400만명의 아이가 학교를 중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한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기는 힘들다고 분석한다.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를 비롯해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가장 취약한 12개 국가 아동은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해제된 이후에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설명이다.
에볼라바이러스 대유행 때 봉쇄됐던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의 사례를 보면 경제적 위기를 맞은 가정은 아이들을 일터로 내보내고, 이들은 학교에 재등록할 가능성이 점점 줄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임금이 낮아지고 일자리는 적어진 상황에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위기 확산으로 많은 아이가 부모를 잃으면서, 보호자 없는 아이들은 노동 착취 현장을 대응하는 데 더욱 취약해졌다. 정부가 무료 급식이나 보건 분야 등의 지원을 점점 줄임에 따라 아이들은 거리에서 물건이라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자택 격리 규정을 어쩔 수 없이 어기고, 바이러스 노출 위험도 높아진다. 인신 매매나 성 착취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경기가 위축된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려 하기 때문에 저임금으로 일을 시키기 수월한 아동 노동자를 더 고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농업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1억5200만명의 아동 노동자 가운데 71%가 코코아, 커피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이후 이들의 노동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전 세계 아동 970만명 교육위기
국제 구호개발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최소 970만명의 아동이 올해 안에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중 다수가 폭력과 노동 착취에 시달릴 우려가 높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교육에 배정된 예산을 쓸 경우 아동의 교육권 침해로도 직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육에 배정된 예산 전액을 코로나19 대응에 사용한다면 2021년 말까지 약 1920억달러 규모의 예산이 부족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전 세계 아동 16억명이 학교 밖에 머물게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세이브더칠드런은 설명했다.
이미 최빈국에서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동 비율이 높고, 재산과 성별에 따른 격차가 상당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현재 글로벌 팬데믹의 영향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동을 11억명 이상으로 추산했고, 교육 소외 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나라만 28개국에 달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장기적으로 전 세계 아동의 교육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지난 6개월 동안 전 세계 아동들은 심각한 보호 위기에 처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11∼17세 아동 8069명과 양육자 등 성인 1만7565명 등 2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이들은 교육과 보건 부문에서 특히 어려움이 컸다. 아동 3명 중 2명이 봉쇄 기간 교사와 연락하지 못했고, 10명 중 8명은 학교 폐쇄 이후 학습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답했다.
◆조혼, 아동 성착취 등 여아 학대 심각
가계 경제의 어려움으로 발생하는 조혼, 강제 결혼, 가정 폭력, 젠더 기반 폭력 등은 여아의 삶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하산 누르 세이브더칠드런 아시아 지역사무소장은 “전 세계적인 휴교 조치로 학령기 아동 15억명이 영향을 입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아동”이라며 “특히 이 지역 여아들이 삶에 꼭 필요한 교육과 지원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최근 수십 년간 아시아 지역에서 진전을 이뤄온 조혼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온라인 아동 성 착취물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필리핀 법무부는 지난 3월 1∼24일 보고된 온라인 성 착취물이 27만91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만6561건)의 3.6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태국에서도 지난 5∼6월 두 달간 15만건의 온라인 아동 성 착취물에서 100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태국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아동 성 착취가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