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아동, 취약한 상태의 성인에 대한 성 학대를 막지 못한 것은 물론 가해자를 보호하느라 피해자 지원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아동성학대독립조사위원회(The Independent Inquiry into Child Sex Abuse·IICSA)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교회의 지속적인 대응 실패가 학대 피해자에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0년대부터 지난 2018년까지 성공회 내 성직자와 종교 지도자 390명이 학대 관련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가해자들은 직을 유지했다.
심각한 성범죄 의혹 제기에도 맨체스터 대성당 주임사제 자리를 지킨 로버트 와딩턴, 8000장의 외설적인 아동 사진을 다운로드했다가 2014년 유죄가 인정된 이언 휴스 목사 등을 보고서는 예로 들었다. 이미 아동 관련 성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이 성직자로 임명된 경우도 많았다.
보고서는 성공회가 이 같은 성 범죄 문제 제기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으며, 이는 무고하고 취약한 이들에 보살핌과 사랑을 제공한다는 성공회의 근본적인 도덕적 목적과 직접적으로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알렉시스 제이 위원장은 “수십년간 성공회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가해자는 숨고, 피해자는 극복할 수 없는 공개의 장벽에 부딪히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공회가 성 학대 주장에 대한 대응을 개선하고, 피해자에 적절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공회는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보고서 내용에 충격을 표하며 “사과만으로 희생자들에 가해진 학대 영향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이러한 사과를 하게 된 데 대해 부끄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너무 늦어진 점을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보고서 권고사항을 전적으로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종교계에서 성직자가 연루된 성 범죄를 쉬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최근에야 이러한 문제 제기가 수면 위에 오르고 종교계에서도 반성 및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
앞서 독일 가톨릭교회에서도 그동안 교회에서 벌어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5만유로(6835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전까지 지급하던 평균 보상금의 10배 수준으로 높인 것으로, 교회 내 성범죄 엄벌에 대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 주교회의는 2018년 9월 가톨릭교회 내에서 벌어진 아동 대상 성범죄를 외면한 것을 시인하고, 반성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몇 년간 가톨릭교회는 독일, 프랑스, 미국, 호주, 칠레 등에서 사제들이 아동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해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돼 왔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