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함께하는 미술전시… 유쾌함 뒤에 묵직한 질문

‘개를 위한 전시, 모두를 위한 전시’
수의사·조경가·건축가 등 전문가 협업
개 중심의 작품·전시 공간으로 꾸며
작가 18명 전시작·퍼포먼스·영화 통해
현대사회 인간과 반려동물 의미 물어
전시 전경

“개판이 된 미술관 기대해주세요!”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윤범모 관장의 말에 좌중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근엄한 ‘관장님’ 입에서 나온 말을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마리 반려견 ‘세상이’, ‘세동이’가 “왈왈” 짖으며 폴작폴짝 뛰었다. 미술관 내 야외 공간인 중정에는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어 따뜻하면서도 바람이 시원했다. 잔디밭 위에 놓인 짚더미와 구조물 등 설치작품들 사이를 뛰노는 개들의 모습은 굉장히 빠르고 날렵해 일반 공원이나 거리, 야외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를 위한 전시, 모두를 위한 전시’는 미술관에 동반할 수 없었던 개들을 새로운 관람객으로 맞는 특별한 전시다. 국내외 작가 18명(팀)의 전시작 및 퍼포먼스 25점, 영화 3편이 반려견과 반려인을 맞는다.

전시는 관람객이 ‘오직 인간’에서 ‘인간과 더불어 다른 생명’이 될 때,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는가 묻는다.



“개와 인간이 함께하는 이 기획을 단순히 전시나 퍼포먼스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미술관을 새로 만드는 과정처럼 보였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한 미술관을 짓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항을 고려하고 결정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콘텐츠뿐 아니라 시설, 규정 등 미술관이 미술관 자신의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소중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성용희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전시 전경

전시를 위해 작가와 학예사 외에도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설채현,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및 감정, 습성에 대한 조언을 했고, 김수진 인천대 법학부 교수는 법률 자문을 맡았다. 개를 위한 건축과 조경을 위해 김경재 건축가, 유승종 조경가가 합류했다.

전시장의 주된 색깔은 개들이 식별하는 색깔인 노랑과 파랑. 적록색맹인 개들이 인간의 세계에서 희뿌연 세계 속에 갇혀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반려견에 인식표를 착용시켰습니까?’,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셨습니까?’, ‘목줄을 2m 이내로 고정하셨습니까?’ 그냥 드나들던 미술관이지만 이번 전시만큼은 입장 전 10여 가지 문답표와 서류 작성이 필수다. 그 생소한 과정 하나하나가 근대와 함께한 문제의식, 인간중심주의를 실감하는 과정이다.

전시 전경

영국 작가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유머러스한 영상 ‘안녕’은 인간과 개의 관계에서 인간이 개를 훈련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닌, 개가 인간을 반려인으로 훈련시킨다는 사실을 말하는 직설화법으로 다가온다.

사진작가 권도연의 ‘북한산’은 이 신나는 개들의 놀이터 한쪽에서 중심을 잡는 가장 무거운 작품이다. 그가 찍은 북한산의 들개는 재개발 지역에서 사람들이 떠나며 버린 개들이다. 버려지고 위협받고 배척되고 내몰린 존재다. ‘흰다리’, ‘뾰족귀’, ‘얼룩이’, ‘흰입’. 작가는 들개가 된 이들에게 다시 이름을 붙였다. ‘애완’의 대상에서 ‘반려’도 되지 못한 종들을 흑백 화면에 담았다.

전시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페미니스트 과학사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에서 큰 모티프를 얻었다. 그는 개를 인간에 의해 자연으로부터 끌려 나온 종신형의 죄수이거나 아버지(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오이디푸스적 존재로 봤다고 성 학예사는 설명한다.

이 전시는 개의 행복을 위하며, 개를 배려하는 전시다. 그러나 전시를 곱씹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내 미술관이라는 극장에서 상영된 판타지였음을 알게 된다. ‘개를 위한 전시’란 제목이 개를 위한 세상은 없음을 보여준다. ‘모두를 위한 전시’란 말은 일부를 위한 세상이라는 말이다. 반려인을 위한 전시이나, 동시에 착각 속에 사는 반려인, 나아가 인간을 고발하는 전시다. 짝 반에 벗 여. 국어사전은 ‘반려(伴侶)’를 ‘짝이 되는 동무’라고, ‘반려동물’이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 개, 고양이, 새 따위’라고 정의한다. 유쾌함 뒤에는 잔인한 현실과 묵직한 질문이 있다. 25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