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에 대해 정부가 공식확인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8일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사실이 의도적인 유출인지 보안사고인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입국 동기와 경로, 가족 등을 둘러싸고도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입국 사실이 공개될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의 질의에 “저도 보도를 통해 접했다”며 이같이 답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조 전 대사대리의 입국 사실이 국면 전환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개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북한 고위급 인사의 한국 망명이라는 민감한 소식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 등으로 정부가 수세에 몰린 시점에 석연치 않은 경로로 갑자기 알려지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런 문제를 의도적으로, 또는 일부 언론 보도처럼 정치적으로 정보를 활용하는 이런 것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도 “정치적인 의도로 (해당 사안이) 보도됐다는 이야기는 정말 어이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 장관은 관련 내용의 유출 경위에 대해 조사를 지시했는지를 묻는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의 질의에는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지 않겠나”라면서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의 방침은 (탈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고, 재북 가족의 신변 문제 등을 고려하면서 그런 방침을 집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는 수차례 한국으로 오겠다는 의사를 전한 뒤 지난해 7월 입국했으며, 가족이 북한에 있어 한국행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뒤늦게 망명이 알려진 데에는 조 전 대사대리의 부인이 언론사에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제보를 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인이 북한행을 원한다는 것이 사실일 경우 북한이 송환을 요구하는 등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당초 유럽이나 미국에 망명할 가능성이 제기됐던 조 전 대사대리가 최종적으로 한국에 온 배경에도 관심이 모인다. 그는 미국과 스위스, 프랑스 등에 망명 의사를 타진했지만 실현되지 못했고 이후 동유럽 한 국가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북한소식통은 “전 세계적으로 요인보호 프로그램이 잘돼있는 나라가 한국과 미국이고, 유럽은 취약한 편”이라며 “미국 망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국으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한국에 올 때 부인, 아들과 동행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은 2018년 11월 14일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가 확인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부친은 아프리카 콩고 주재 북한 대사를 지낸 조춘형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를 지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부친은 30년쯤 전에 돌아가셨다”며 “부친은 북한 외무성 출신 대사였고, 그의 장인도 대사였다”고 말했다.
북한이 조 전 대사대리의 소식이 알려진 것을 계기로 자제했던 대남 비난에 다시 나설지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지난 6일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 보도 이후 관련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민감해할 만한 사치품 공급 등의 분야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조 전 대사대리의 탈북에 북한이 비난을 쏟아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조 대사대리가 망명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 했고 북한도 쟁점화해봤자 이미지만 실추될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공세보다는 우회적 비판을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19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탈북하자 처음에는 납치극이라며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가 이후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는 혁명가요를 인용해 에둘러 비판했다. 2016년 태 의원의 망명 때는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태 전 공사가 국가자금 횡령, 미성년 강간 범죄자라며 “인간쓰레기”라고 맹비난했다.
백소용·장혜진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