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화재’ 형제 비극 또 없게… ‘피해아동보호명령’ 개선돼야 [이슈 속으로]

도입 6년… 활용률 저조 ‘유명무실’
법원이 피해아동 격리 조치 등 결정
아동학대·방임 사건 지난해 3만45건
법원 보호명령 결정 사건 1.4% 불과
제도 문제점 많아… 실효성 의문
법원 보호명령 결정 때까지 두달 소요
학대자 상담 거부땐 강제할 방법 없어

올해로 열 살과 여덟 살, 엄마의 방임 속 자라온 두 초등학생 형제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려 불을 켠 건 부모만의 책임일까. 지난달 14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발생한 불로 중화상을 입은 A군과 동생 B군 형제의 이웃들은 사고 발생 2년 전부터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방치돼 있다”며 수차례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요청했다.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신고를 받고 형제의 엄마 C씨와 상담을 하는 등 관련 조치에 나섰지만, C씨의 방임 학대는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 경찰 조사에서는 방임 외에도 A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폭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보전은 C씨의 행동에 변함이 없자, 지난 5월 형제를 부모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방식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법원에 청구하기도 했다. 피해아동보호명령은 수사기관이 아동학대범죄 해당 여부 등을 판단하기 전, 법원의 결정을 통해 학대 피해 아동을 신속히 보호하고자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법원은 형제의 의사를 고려했을 때, C씨로부터의 분리조치보다는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검찰로부터 아동보호사건으로 넘겨진 C씨에 대해서도 법원은 상담 처분을 결정했다. C씨는 사고가 벌어지기 전날 밤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배가 고팠던 A군 형제는 라면을 끓이려 불을 붙이다 변을 당했다.



‘인천 초등생 형제 사건’은 사전에 위험 정황이 포착됐지만, 끝내 비극을 막아내지 못한 사례로 기록됐다. 행정뿐만 아니라 사법적 안전망의 빈틈이 드러났다. 2014년 도입돼 올해 시행 6년을 맞은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되돌아보고, 보완 및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낮은 활용률… 학대행위자 교육에 한계

9일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3만45건의 아동학대 사례 중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이 결정된 사건은 431건(1.4%)에 그쳤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조치된 2705건의 사례만을 대상으로 했을 경우에도 16% 수준에 머문다.

피해아동보호명령은 피해 아동, 변호사 등의 청구를 통해 가정법원이 결정하는 제도로 아동학대처벌법에 규정돼 있다. 판사는 이 제도를 통해 아동학대행위자와 피해 아동을 격리시키거나 접근 제한, 아동복지시설 등으로의 피해 아동 보호위탁, 아동학대행위자의 친권행사 정지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더라도 위험 상황에 처한 아동에 대해 신속한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과 판사 직권으로 명령을 개시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와 관련해 문제점으로 꼽히는 부분은 우선 이 제도 내에서 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개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제47조 7항은 이 제도를 통해 피해 아동에 대한 상담·치료위탁 명령이 결정될 경우 피해 아동의 보호자도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는 있지만, 보호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로 인해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통한 학대행위자의 양육방식 등에 대한 교정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표현지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지난해 7월 학술지 ‘가족법연구’에 실린 ‘피해아동보호명령 실무’에서 “피해아동보호명령 절차가 개시된 경우 아보전에서 학대행위자에게 양육에 관한 교육이나 상담 등의 지원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강제력이 없어서 행위자가 이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다”며 “가정법원이 피해아동보호명령 절차에서 직권 또는 아보전의 청구에 따라 부모에게 상담 또는 수강명령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결정 시간 길어… 아동복지법에도 명문화해야”

현장에서는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문제도 지적한다.

장화정 아동권리보장원 아동보호본부장은 “피해아동보호명령 결정까지 두 달 이상 걸리고, (법원의) 임시보호 명령도 2주 정도 걸리는 상황에서 ‘응급조치 72시간’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분리 기간으로는 짧아도 너무 짧다”며 “법원과 아보전의 소통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용화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은) 긴급성·신속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오히려 아동보호에 소홀해질 위험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며 “신속성에 관한 구체적인 최소한의 결정시한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제도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피해 아동의 접근성이 용이한 학교의 장도 명령 청구권자에 포함되도록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재판 과정에서 알게 된 아동학대 상황에 대해 판사가 신속히 개입하고자 마련된 판사 직권 개시 조항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 가정법원 판사는 “(직권 개시는) 판사가 사건기록을 검토하거나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개시해야 하는데, 그 정도 사안을 인지할 정도로 아동학대 정황이 드러나는 사건기록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아동학대 예방 실효성 강화를 위해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를 아동복지법에도 명문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보호자의 아동에 대한 방임 등에 대한 조치를 위해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를 아동복지법에도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아동복지법에도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를 넣는다면 제도가 보다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