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심야 열병식에서 주민들의 노고를 언급하며 눈물을 보였다. 북한 주민들과 군 장병들에게 “고맙다”고 총 12차례 말하고 “미안하다”, “면목없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선대의 대중연설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김 위원장의 달라진 통치스타일을 드러내는 한편 북한의 현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병식 연설에서 “오늘의 이 영광의 순간을 안아오고 지키기 위해 올해에 들어와 얼마나 많은 분들이 혹독한 환경을 인내하며 분투해왔나”는 말로 주민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피력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한명의 악성비루스(바이러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연설의 상당 부분이 제재로 인해 고생하는 주민들에 대한 걱정과 감사, 미안함을 표현하고 자신을 낮추는 데 집중됐다. 극존칭을 썼으며, 연설 중 감정이 복받치는 듯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도 보였다. 광장에 모인 주민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다만 김 위원장은 연설 뒤 열병식에서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공개될 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열렬히 환호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다.
◆축제형식 ‘깜짝 효과’… 전략무기 혼선 노림수도
북한이 10일 심야에 열병식을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간이어서 열병식에 공개한 신형 무기의 식별이 쉽지 않다는 점,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 등이 복합적으로 제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월 정치국회의에서 이번 열병식을 “특색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심야 시간대를 활용해 볼거리가 있는 축제 형식의 열병식을 연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의 불꽃놀이와 같은 극적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7월 논평에서 느닷없이 미국 독립기념일 DVD를 얻고 싶다고 한 바 있다.
한·미 정보당국 등이 전략무기 자산을 파악하는 데 다소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행사를 심야에 치른 배경으로 거론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인원 동원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규모가 눈에 띄지 않는 야간 열병식을 선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열병식에서 김 위원장은 물론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한명의 악성비루스(바이러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 건강해 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열병식에서 단연 눈에 띄는 ‘실세’는 김 위원장을 밀착 보좌한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군 총참모장이었다. 김 위원장이 이들에게 힘을 싣는 것은 북한이 군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내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 등을 전후해 북한이 군사적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할 것으로 분석돼왔다.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사진)는 이번 열병식에도 보이지 않았다. 올해 1월 설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한 뒤 9개월째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임신 및 출산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리설주는 2016년에도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두문불출한 전례가 있으며, 당시 임신·출산설이 제기됐다.
한편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착용한 손목시계는 고가의 스위스 시계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