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주민인 60대 A씨는 지난해 거래 은행에서 불이 나게 전화를 받았다. 은행 측은 라임 펀드를 권유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 투자해 절대 안전하다”고 했다. “이 회사들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원금손실 가능성은 있지만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가입 후 몇 달 만에 라임 사태가 터졌다. 억울하고 분해 잠을 설치다 법무법인을 찾았다. 하지만 녹취록도 없이 은행과 싸워 투자금을 되찾을 수 있을지 불안감은 여전했다.
내년 3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시행되면 A씨 같은 불완전판매 피해자가 줄어들게 된다. 금융회사가 무턱대고 안전하다며 가입을 부추기기 힘들어지고, 소비자도 금융회사가 제대로 설명했는지 입증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국회 문턱을 밟은 지 9년 만에 빛을 본 금소법은 소비자 보호 강화에 첫발을 뗐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애초 법안에서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제외되고 금융사의 손해배상 입증 책임도 설명의무에 국한돼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벌써 21대 국회에 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다. 금융회사 역시 곧 나올 시행령을 주목하며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느라 분주하다.
금소법은 상품 판매 과정부터 투명성을 높였다. 일단 펀드·변액보험만 해당되던 6대 판매원칙을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연금 수입으로 예금만 해본 고객에게 위험이 큰 펀드를 권유해선 안 되며(적합성 원칙), 대출이 잔뜩 있는 소비자가 먼저 사모펀드를 들겠다고 하면 위험을 고지(적정성 원칙)해야 한다. 상품의 중요사항에 대해 설명의무를 지켜야 하는 건 물론이다. 불공정영업행위·부당권유행위 및 허위·과장광고도 금지된다.
금융회사가 6대 원칙을 어기면 소비자는 계약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기간은 최장 5년 이내에서 시행령으로 정한다. 주요 판매원칙을 위반한 금융사는 수입의 50%를 징벌적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과태료는 최대 1억원으로 상향됐다. A씨 같은 피해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면, 금융 당국이 발빠르게 판매 제한·금지를 명령할 수도 있다. 현재 일부 투자자문·보험에 적용 중인 청약철회권은 시행령에서 정하는 금융상품으로 확대된다.
소비자 방어권 역시 보강했다. 설명의무 위반으로 고객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고의·과실이 없었음을 금융회사가 입증해야 한다. 최초 법안에서는 적합성·적정성 원칙 역시 금융회사가 입증하도록 했으나 최종적으로 빠졌다. 소비자가 분쟁조정·소송에 대응하려 금융회사에 자료 열람을 요구하면 응해야 한다. 고객이 신청한 소액분쟁의 경우 마무리될 때까지 금융회사의 소 제기가 금지된다. 법원도 소송을 중지시킬 수 있다. 금융회사의 시간끌기용 소송을 막고 소비자가 막대한 소송비로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징벌적 손배제 등 개정안 다수 발의
금소법은 영업 현장의 일대 변화를 예고한다. 다만 금융회사가 받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적을 전망이다. 법안이 9년간 표류한 사이, 역설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이 조율됐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금융회사에 치명적인 조항들도 제외됐다. 학계·소비자 단체 일부에서 ‘알맹이가 빠진 법’이라며 아쉬워하는 이유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적합성·적정성 원칙의 입증 책임이 여전히 소비자에게 있고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빠졌기에 반쪽짜리 법”이라며 “그래도 설명의무의 입증 책임이 금융회사로 전환됐고 계약해지권이 도입되는 등 소비자 보호 첫발을 디딘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윤민섭 연구원은 “소비자에 대한 빠른 보상, 소송지원 등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금융사고로 은퇴 생활비 등이 묶인 소비자들이 생활고에 처하는 2차 피해를 막으려면 빠른 보상이 필요하다”며 “금융소비자 보호기금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회사가 피해 구제안을 제시하면 제재하지 않는 ‘동의의결제도’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윤 연구원은 “미국처럼 금융당국이 문제 직원의 금융업 취업 금지, 피해 구제 등 다양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제재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년 후에나 법이 시행되지만, 국회에는 벌써 개정안이 우르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개정안에 담았다. 고의·중과실의 경우 금융회사가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했다. 금융회사의 고의·과실 입증 책임은 ‘법 위반’ 전체로 확대시켰다. 같은 당 민병덕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함께 집단소송제도를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2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조정 사건에 편면적 구속력을 적용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금융분쟁 조정 사건의 80% 이상이 2000만원 이하다. 영국 등에서 적용 중인 편면적 구속력은 소비자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회사가 거부해도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하게 하는 장치다. 이는 금융회사의 재판청구권을 박탈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