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됐다가 일본 정부 항의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평화의 소녀상’이 일단 유지될 수 있게 됐다. 독일 관할 구청이 13일(현지시간) “대화로 해법을 찾자”는 입장을 밝히면서 변화의 여지가 생겼다. 일본이 독일을 민족주의로 압박했다면,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시민단체 등은 보편주의로 맞선다는 전략이다.
베를린 미테구청은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소녀상 철거 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접수됨에 따라 “내일인 철거 시한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은 “철거 보류로 확보된 시간 동안 절충안을 찾고,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기념물을 설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미테구와 소녀상 관련 시민단체 간의 협의 테이블은 조만간 마련될 예정이다.
미테구의 허가로 지난달 말 소녀상이 세워지자 일본은 전방위로 독일을 압박하며 철거를 요구했다. 관방장관, 외무상, 주독 일본대사관이 나서 지역 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소녀상 지키기에 나선 베를린 시민과 교민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전쟁 피해 여성 문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웠다. 코리아협의회는 40여개 현지 시민단체와 연대에 나섰다. 미테구의 이날 태도 변화는 보편주의가 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14일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양심의 수도 독일 베를린의 소녀상을 철거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할머니는 “평화의 소녀상은 세계 역사와 인권 문제 해결의 상징이자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과 슬픔, 후세 교육의 심장”이라며 “소녀상 철거 주장은 나쁜 행동이며 역사의 죄인”이라고 밝혔다. 독일에 대해 “일본과 같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일본과 다르게 반성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에 앞장선 나라”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회견 후 주한 독일대사관을 방문해 철거명령 철회 촉구서를 전달했다. 기자회견에 동행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앞서 열린 제1461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국가 간 갈등이 아닌 보편적 여성 인권의 표상이자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벗”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광복회도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미테구청장 앞으로 소녀상 철거명령 취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정지혜·유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