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서해 피격 사망 공무원의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친필이 아닌 컴퓨터 타이핑으로 작성돼 논란이 이는 것과 관련, 청와대가 14일 “대통령의 서한은 대통령이 먼저 육필로 쓴 다음 이를 비서진이 받아 타이핑한다”고 설명하면서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숨진 공무원의 유족은 문 대통령이 보낸 편지가 타이핑으로 작성됐고 서명도 기계(전자)로 했다며 실망감을 드러낸 바 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이 같이 밝히며 “이번뿐만 아니라 외국 정상에게 발신하는 친서도 마찬가지”라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세계적 록밴드 U2의 리더 보노가 보낸 편지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구두 메시지가 담긴 서한도 타이핑한 것이었다고 부연했다. 강 대변인은 “타이핑 여부가 왜 논란의 소재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편지는 내용”이라며 “봉투나 글씨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답장에서 ‘가슴이 저리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위로했다”며 “이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한 대통령이 마음을 담아 답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피격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씨는 언론에 문 대통령이 보낸 편지 전문을 공개했다. 이 편지는 앞서 서해 피격 사망 공무원의 아들인 고등학교 2학년 이모군이 문 대통령에게 아버지의 명예를 돌려달라며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 성격이다. 문 대통령은 A4용지 한 장 분량의 답장에서 “내게 보낸 편지를 아픈 마음으로 받았다”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안타까움이 너무나 절절히 배어있어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한마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해경의 조사와 수색 결과를 기다려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답장을 두고 이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이 그동안 방송에서 수차례 밝힌 내용인데, 더 추가된 대책이나 발언은 없었다”면서 “편지가 처음 도착했을 때는 먹먹한 마음에 뜯어보는 것도 망설여졌지만 막상 내용을 보니 실망감과 허탈한 마음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동생의) 고등학생 아들이 절규하는 마음으로 쓴 편지의 답장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웠고, 무시 당한 기분이 들었다”고도 했다.
앞서 이군은 지난 5일 이씨가 언론에 공개한 2쪽짜리 자필 편지에서 문 대통령에게 “저와 엄마, 동생이 삶을 비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아빠의 명예를 돌려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군은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주인공이 대통령의 자녀 혹은 손자라고 해도 지금처럼 하실 수 있겠느냐”고도 되물었다. 이어 “아빠는 왜 거기까지 갔으며, 국가는 그 시간에 아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왜 아빠를 구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고 적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현 상황을 누가 만들었으며,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아빠를 지키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고도 강조했다.
이씨의 동생이자 이군의 아버지인 이모씨는 지난달 21일 오전 11시30분쯤 소연평도 인근 해상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된 뒤, 이튿날 오후 북측 해상에서 발견됐다. 북한군은 이씨에게 총격을 가한 뒤 시신(북한은 부유물이라고 주장)을 불태우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군 당국과 해경 등은 그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이씨의 유족은 그가 월북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정부 발표를 비판하고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