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전격적인 방미는 미국 대선(11월3일·현지시간)을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외교가에서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사회와 미국을 향해 던진 ‘종전 선언’ 제안과 연결짓는 분석을 내놨다.
서 실장이 이번 방미를 통해 종전 선언을 포함한 남북,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종전 선언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카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월츠 공화당 하원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섣부른 종전 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구실만 만들 것”이라며 “하원 군사위 소속 의원들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종전 선언 주장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면서도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뿐 아니라 재래식 병력위협 감소에 대한 진전이 없으면 종전 선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4일 화상 브리핑에서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한 데 대해 “한 국가가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그것이 실제로 기능하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일을 테스트하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은 지난해 ICBM 시험을 하지 않았고 그 직전 해에도 마찬가지였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이는 ‘북의 신형 ICBM은 미 본토 직접 타격에 대한 위협을 높인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과는 차이가 있다.
◆서욱, 공중급유기 타고 직접 날아갔지만… 에스퍼, 공동 기자회견 돌연 취소 논란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열린 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는 공동성명 등 결과 면에서 역대 SCM 중 가장 치열했던 회의로 평가된다. 51차 SCM 공동성명에 포함된 ‘주한미군 유지’ 문구가 사라졌고, 게다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언급하며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합의를 종용한 때문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우리 측은 공군 공중급유기를 타고 방미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서욱 국방부 장관과 에스퍼 장관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쓴 채 한반도 안보 정세 평가 및 정책 공조,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등 주요 동맹 현안 전반을 논의했다. 국방장관은 통상 SCM 방미 시 역대 연합사령관과 워싱턴 싱크탱크 및 의회 관계자 등을 면담해왔지만, 이번에는 이런 절차도 모두 전화로 진행됐다. 외부 접촉을 줄이기 위해 동선을 최소화하고, 외부 일정도 아예 없앴다는 후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면 SCM 회담 개최 배경과 관련해 “서 장관의 의지가 있었다”며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고 대면 접촉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의 백미인 공동 기자회견이 돌연 취소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예정된 회견을 취소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임을 감안하면, 양국 간 현안에 대한 이견이 불거졌거나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적 결례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11월 3일 미 대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무성하다. 최근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미 본토를 위협할 신형 무기를 선보인 데 대한 질의가 이어질 경우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측은 ‘지난 8월 이후 외부 행사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지만 뒤늦게 이런 사실을 확인한 우리 측 준비 부족 탓도 있다. 국방부 관계자가 이번 SCM 성과 면에서 “큰 정책 변화는 없었다”고 밝힌 점에서 보면, 코로나19 국면을 뚫고 공중급유기를 동원하면서까지 대면 SCM을 고집했어야 했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전작권 두고… 균열 더 커진 韓·美동맹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가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열렸으나 한·미 간 이견만 드러낸 채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핵심의제로 다룬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미측의 ‘제동’으로 문재인정부 임기 내인 2022년까지 불가능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만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SCM에서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 문제까지 거론하며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재차 압박했다. 양국이 SCM 개최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라는 문구도 빠졌다. 이 문구는 한·미 정상이 2008년 회담 당시 2만8500명 수준의 주한미군 유지를 합의하면서 매년 성명에 포함됐는데, 12년만에 빠진 것이다. 당초 예정된 양국 장관 공동기자회견이 취소되는 일까지 빚어졌다. 한·미동맹의 균열 조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 나온다.
이런 가운데 13∼16일 일정으로 방미한 청와대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에서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동하는 등 미 행정부 인사들과 연쇄 접촉에 나서 주목된다. 청와대는 15일 “서 실장은 14일(현지시간) 오브라이언 보좌관과 면담했고 두 나라는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전작권 전환, 미 대선 이후로… 한·미동맹 파열음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첫 대면 회담이었던 이번 SCM에서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 주요의제로 다뤄졌다.
서 장관은 언론에 공개된 SCM 모두발언에서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전작권의 한국사령관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조건의 조기 구비’ 발언에 거부 의사를 표했다. 전작권의 한국군 환수 문제와 관련해 미 국방장관이 공개석상에서 서둘러 전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2022년까지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갖추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거부당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양 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포함한 미래연합사로의 전작권 전환의 향후 추진방향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3단계 검증 평가 중 올해 예정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제대로 하지 못한 2단계 FOC 검증을 논의했다는 뜻이지만, 이 또한 실시 시기 등 세부사항에선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한국은 내년에 FOC 검증을 실시하는 쪽에 무게를 뒀지만 미국은 상황을 두고 보자는 식으로 확답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전문가들은 “현정부에서의 전작권 전환 문제는 결국 11월 미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할 듯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美, 주한미군 카드로 방위비분담금 재차 압박
에스퍼 장관은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서도 작심한 듯 한국의 대폭 증액을 압박했다.
한·미는 지난 3월 말 작년 분담금(1조389억원)에서 13%가량 인상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하고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에스퍼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방위비 부담이 미국 납세자에게 불공평하게 떨어져선 안 되고, 한반도에 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보장하기 위해 빠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담금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 규모를 연계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51차 SCM 공동성명에서 “에스퍼 장관은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공동성명에는 빠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게 특별한 전력이나 병력 감축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병력의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방위공약 차원의 문제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박현준·박병진·홍주형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