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서(가명)씨가 남편과 상의해 둘째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도 김씨와 비슷하다. 정씨는 결혼 전만 해도 아이를 두세 명 낳을 생각이었지만, 첫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정씨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옛말이지만 요즘은 부모 지원이 없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조차 힘든 사회”라며 “둘을 지원하기는 힘들 것 같아 한 명만 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는 부부가 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적 환경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는 탄생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 경제적 형편 등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출산을 중단하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과 계층이동 가능성 영향요인 변화 분석’에 따르면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계층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청년은 2013년 46.8%에서 2017년 61.6%로 14.8%포인트 늘었다. 청년층 10명 중 6명이 노력해도 계층 이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월 가구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청년은 100만원 미만인 가구 청년층보다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비율이 3배가량 많았다. 저소득층 청년일수록 자신의 계층을 바꾸기 어렵다고 인식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원이 사회의 계층을 결정한다는 신조어인 ‘수저계급론’이 실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최근 통계들은 ‘계층 고착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장학재단의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4년제 대학 전체의 국가장학금 신청자 중 고소득층 자녀는 39.5%, 저소득층 자녀는 30.1%로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SKY’로 불리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고소득층 자녀 비율은 56.5%로 저소득층 자녀(21.5%)보다 2.6배 많았다. 특히 서울대의 경우 고소득층 자녀(62.5%)와 저소득층 자녀(18.5%)의 격차가 3.4배나 벌어졌다. 강 의원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고소득층 자녀와 저소득층 자녀 간 재학 비율 격차가 더 커진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따라 대학 격차가 더 심화되고 있다”며 “고소득층 자녀 쏠림 현상을 방지하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로스쿨·학종… 줄어드는 계층 사다리
많은 이들은 최근 한국사회에 ‘계층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은 사법시험 폐지다. 정부는 2009년 다양한 배경의 법조인 양성을 위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도입했지만 로스쿨 등록금 자체가 비싼 데다 학업과 변호사 시험 준비 과정에서 많은 돈이 들어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입학 엄두를 내기도 어렵거니와 입학 이후에도 학업을 이어나가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로스쿨 측은 매년 취약계층 학생을 일정 비율 선발해 전액 장학금을 주는 등 보완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로스쿨 미졸업자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거나 사시를 병행하는 등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법학교수회도 “돈이 없으면 입학조차 할 수 없고, 입학시험 성적이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로스쿨은 특정 계층에 대한 특혜를 조장한다”며 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했다. 서울의 한 로펌에 재직 중인 변호사는 “사시 준비에도 돈이 들어가서 ‘로스쿨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만 법조인이 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다른 나라들은 로스쿨 외에 시험 절차도 남아있지만 한국은 로스쿨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점은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저소득층은 로스쿨 입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로스쿨 제도를 개선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 입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신도 크다. 2020학년도 대입 모집인원 중 정시는 22.7%, 수시는 77.3%인데 수시 중 31.7%는 학종이다. 전체 대입 인원 4명 중 1명 정도는 학종으로 선발된다는 의미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내신보다 정성평가로 당락을 결정하는 학종은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려는 게 취지다. 하지만 고액의 컨설팅 학원이나 부모의 정보력, 재력 등이 뒷받침된 수험생일수록 유리한 경우가 많아 ‘금수저 전형, 학부모 전형’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 학종을 위해 대학 연구논문 등에 자녀나 친인척 미성년자를 공저자로 등재하는 사례도 많다. 교육부가 대학 연구논문을 전수조사 결과 2007년 이후 미성년자를 공저자로 등재한 대학교수의 논문이 549건에 달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결혼 2년차의 이모(35·여)씨는 “부모 힘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사 등을 보면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아이를 절대 낳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회에서 잘 기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계층이동이 자유롭다는 인식이 생겨야 출산율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영 전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자녀의 학력이 부자 간 소득계층 대물림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통해 “소득 격차 심화는 사회가 추구하는 기본 이념인 평등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교육의 계층이동 사다리 역할을 복원하기 위해 공교육 정상화 등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