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길 찾기 능력… 길 잃어가는 인류

‘최후의 승자’ 된 호모사피엔스
비결은 탐험 욕구·길찾기 능력
기억력·언어 등 인지력과 밀접
현대 지도 앱·내비게이션 의존
공간 능력 저하·행동반경 축소
인류 진화에 파급 영향 등 탐색
길 찾기 능력은 생존의 핵심 조건이다. 우리 조상들이 식량의 위치를 알아내고 적을 파악하면서 발달시킨 길 찾기 능력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마이클 본드/어크로스/16800원

 

“길 찾기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한다.” 영국왕립학회 수석연구원을 지낸 유명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가 쓴 이 책 요지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현생 인류를 말하는 호모사피엔스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 길찾기 능력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과학, 행동과학, 인류학, 심리학 등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길을 찾으면서 서로 협력하고 소통해왔고, 길찾기 능력을 발달시키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탐구서라 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 지구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곳에는 이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인류가 살고 있었다. 호모스피엔스가 이들을 제치고 최후의 승자가 된 것도 탐험 욕구와 길찾기 덕분이라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설명이다. 먹을 것과 안전하게 잘 곳을 찾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던 선사시대 인류에게, 자원의 위치와 포식자의 동향에 관해 다른 집단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진화적으로 훨씬 유리했다.



그렇다면 이렇다 할 랜드마크도 없던 시대에, 선조들은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어떻게 길을 찾았을까. 지명이 그 해답 중 하나다. 북극해 연안에 주로 사는 이누이트족이 지명을 붙이는 방식은 흥미롭다. 이누이트족이 사는 곳은 외부인이 보기에는 특징 없고 단조로운 지역이다. 하지만 이누이트족은 모든 개천, 호수, 섬은 물론이고 돌무더기에도 이름을 붙였다. ‘엉덩이처럼 생긴 두 섬’이란 뜻의 눌루야크, ‘바닥이 밝은색이어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호수’라는 뜻의 카우마주알루크 등 지형의 특징을 세심하게 묘사한 이름을 붙였다.

마이클 본드/어크로스/16800원

저자는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인용해 공간 및 길 찾기에 관한 정보들을 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가 기억까지도 관장한다는 사실도 설명한다. 숙련된 런던 택시기사들의 후위 해마 크기가 보통 사람들보다 크다는 사실을 발견해 큰 반향을 일으킨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엘리너 매과이어 교수는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연구하면서, 해마의 공간 관련 기능과 장면을 구성하는 능력이 길 찾기뿐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길 잃은 사람과 우울증 환자의 심리적 공통점도 발견된다. 길을 잃은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리고, 두려움 때문에 주변 풍경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등 이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원들은 신경과민이나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일수록 인지 지도를 생성하거나 랜드마크 간의 공간적인 관계를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해마의 위치 세포를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길 찾기 능력은 추상적 사고, 상상력, 기억력, 언어 등 필수적인 인지 능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우리의 몸은 물론 마음도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그러면서 현대의 이기(利器)가 우리의 길찾기 능력을 위협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찾는 일은 GPS에 맡기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스마트폰 앱에 그려진 경로를 따라가거나,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를 그대로 따르면 손쉽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무엇이 있는지 알 필요도, 어떤 길로 갈지 선택할 필요도 없다. 인류에 편리를 가져다 준 이러한 변화는 지난 수만 년 동안 인간을 살아남게 해주었던 공간 관련 능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우리의 위치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에 대한 대가로 우리의 위치 감각을 내주게 된 것이다. 이는 GPS를 따라가면서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고, 우리가 더 이상 풍경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같이 행동반경이 줄어든 것도 길 찾기 능력의 저하를 불러온다. 2015년 셰필드 대학교의 연구원들이 도시에 사는 가족 3세대와 그들이 아이였을 때 어떤 식으로 돌아다녔는지에 관한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성장한 할머니는 혼자서 3∼4km를 걸어가 친구들을 만났던 반면 열 살 된 손자가 혼자 가장 멀리까지 간 곳은 100미터 거리에 있는 친구의 집이었다. 3세대 만에 행동반경이 30분의 1로 감소했다.

책을 통해 길 찾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활동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것은 그곳의 문화에 다가가는 방법인데, 우리가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길을 간다면 이러한 상호 교류의 기회는 더 이상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