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맑은 하늘과 함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코로나19로 우울한 나날을 보낸 사람이 많았다. 코로나블루로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영화 ‘남매의 여름밤’(감독 김단비)이 위로와 잔잔한 추억을 전해주면서 2만 관객을 넘겼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이 됐고,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과 뉴욕 아시안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까지 받았다. 그렇다고 대단한 작품성을 지닌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 독립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주제가인 신중현 작사·작곡, 장현이 부른 ‘미련’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반지하에 살던 옥주(최정운)와 남동생 동주(박승준)는 아빠(양흥주)와 함께 여름방학 동안 우선 할아버지(김상동) 집에서 살기 위해 아빠가 장사하는 작은 승합차에 짐을 싣고 떠난다. 그때부터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의 7080 가요가 깔리면서 회한 어린 분위기가 영화를 감싼다.
1990년대생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감성이 묻어나는 화면과 공간, 낡은 재봉틀 같은 소도구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70년대에 지은 이층 양옥집, 손때 가득 묻은 목조로 된 내부 인테리어, 잡초와 함께 더불어 자란 마당의 나무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모습 등이 영화적 상상력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늘 봐왔던, 추억 돋는 물건들이 주는 편안함을 전해준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이면서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가족들이 식탁에서 함께 먹는 음식 메뉴도 잡채, 비빔국수 등 정겹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