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전세대출 잔액 120조원 넘었다

한은, 국회 제출 자료
부동산·전셋값 급등 영향
4년새 80조원 이상 늘어
사진=연합뉴스

국내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이 사상 처음으로 1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6년 말부터 4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만 80조원 이상이 늘어났다. 부동산값 상승에 따라 전셋값도 치솟으면서 가계 보유자금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대출 수요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20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6개 은행의 지난 8월 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120조1000억원으로 7월 말 대비 2조9000억원(2.5%) 증가했다. 이는 지난 2월(3조7000억원)에 이어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역대 두 번째로 큰 증가 규모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6년 말만 해도 36조원에 불과했으나 2017년 말 48조6000억원, 2018년 71조7000억원, 2019년 98조7000억원으로 매년 급등했고, 올해에도 증가세가 유지됐다. 공교롭게도 부동산값을 잡으려 갖가지 규제를 들이댄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2017년 이후 전세자금대출은 가파르게 상승한 모습이다.

 

이처럼 전세대출이 급증한 것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등 부동산 규제로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기존 전세계약을 2년 연장하는 세입자들이 늘어 전세 매물이 줄어들었고, 집주인들도 전세보다 수익성이 훨씬 좋은 월세로 전환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9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 따르면 지난달 14일 기준 전국 주택종합 전세가격은 0.53% 올라 전월(0.44%) 대비 상승률이 커졌다. 이는 2015년 4월(0.59%)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한은 관계자도 “전세 수급 불균형에 대한 우려 등으로 전세가격이 높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며 “전셋값 상승에 따른 전세자금대출 수요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증가세라면 올해 말에는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13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세 품귀현상으로 인해 최근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증가세는 꺾였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합산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지난 16일 기준으로 99조8473억원으로, 지난 9월 말(99조8037억원)에 비해 436억원만 늘어나는 데 그치며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된 모습이다. 이는 전세 품귀현상이 전셋값 상승이라는 눌러버린 것으로 풀이된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