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화 성공 스토리는 경이롭다. 5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민주주의 체제를 안착시킨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롤모델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 지도자 조슈아 웡은 “한국 사회는 홍콩인들이 계속 싸워나갈 영감을 주는 미래의 사회모델”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용기를 얻고 나아갈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다.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시위 현장에선 오래전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민주화운동은 한류 콘텐츠로 우뚝 섰다. 1950년대에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조롱했던 영국 신문은 이제라도 통찰력 부족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운동권의 공적은 크다. 그들의 희생과 애국심이 없었던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열린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오지는 않았을 터이다. 문제는 민주화 성공 이후 운동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진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최근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대학 특례입학과 취업 가산점, 장기 저리 대출 등의 혜택을 주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런 혜택을 누리려고 민주화운동 했나.” “특권 세습을 위해 음서제 만드나.” “국민을 호구로 보는 작태다.”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에 올라온 8000여건의 반대 의견을 보면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운동권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이 이번 법안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운동권 출신들이 보여준 탐욕과 위선, 내로남불, 편 가르기에 대한 실망감이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2000년에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민주화 유공자들의 명예 회복과 경제적 보상이 이뤄졌는데 자녀 지원법까지 만드는 건 탐욕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해 온갖 고초를 당하고 곤궁하게 살면서도 보상금 신청을 안 한 이들의 처신과 대비하면 더욱 그렇다. 9년을 감옥에서 지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민주화운동을 지식인의 의무로 여겼다. 돈으로, 그것도 국민이 낸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우리의 명예는 뭐가 되나” 라고 묻지 않았던가.
김환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