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해 파문이 일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환매 사태 관련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데 대한 반발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박 지검장은 22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지휘 배제의 주요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며 정치권이 검찰을 과도하게 흔들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올렸다. 특히 그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근거가 된, 윤 총장이 라임 사태와 관련한 검사·야당 정치인 비리 관련 의혹을 뭉갰다는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 지검장이 올린 게시글에 사의를 만류하는 검사들의 댓글도 이어졌다. 세월호 특수단장을 맡고 있는 임관혁 서울고검 검사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이 최근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며 “검사장님 힘내시고 사직 의사는 거둬달라”고 당부했다. 서울남부지검 인권감독관을 지낸 이영림 대전고검 검사도 “개인의 수인 한계와 직업인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선 무리한 요구에 너무나 힘이 드셨을 것 같다”며 “사직 의사는 거둬줬으면 한다”고 적었다. 전날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궁예 관심법 수준”이라며 비판한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도 “용기 내서 글 올려주신 것 감사드린다”며 “검사장님이 중심을 잡고 라임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사직의 뜻은 거둬주길 간청드린다”고 했다.
다만 이날 법무부가 신속하게 후속 인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 박 지검장이 사의를 거둘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잦은 지휘부 교체로 수사의 맥이 끊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박 지검장의 후임이 인선되면 전임 송삼현 전 남부지검장에 이어 추 장관 취임 이후 라임 수사를 지휘하는 세 번째 남부지검장이 된다. 박 지검장은 지난 8월11일 부임 후 3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사의를 표명했다.
박 지검장의 후임으로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당시 검찰개혁추진지원단 부단장을 지낸 이종근 대검찰청 형사부장이 거론되고 있다. 이 부장은 지난 8월 인사 이전에는 남부지검 1차장검사를 맡은 바 있고, 현재 라임 관련 검사 술접대 의혹 등을 감찰 중인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의 남편이기도 하다.
유지혜·정필재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