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의 여왕’, 美해사 컴퓨터 교육관으로 부활하다

美 해군 역사상 최초의 女 제독 그레이스 호퍼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 창시에 큰 기여
미국 해군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제독(준장)이 된 그레이스 호퍼. 왼쪽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모습. 오른쪽은 퇴역을 앞둔 만년의 사진. 미 해사 홈페이지

미국 해군 최초의 여성 제독으로 무려 80세까지 복무하고 퇴역한 그레이스 호퍼(1906∼1992)의 이름을 딴 건물이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미 해군사관학교 캠퍼스에 들어서 눈길을 끈다. 수학자인 호퍼는 컴퓨터 언어 ‘코볼(COBOL)’을 창시해 ‘코볼의 어머니’, ‘코딩의 여왕’ 등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호퍼 기념관’으로 명명된 해당 건물은 해사 생도들에게 사이버 안보 및 컴퓨터 과학 등을 가르치는 용도로 쓰인다.

 

25일 미 해사에 따르면 1억4300만달러(약 1614억원)의 예산을 들어 지은 호퍼 기념관이 지난 15일 준공식을 갖고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해사 교장인 숀 벅 중장은 기념사에서 호퍼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개척자”라고 부르며 “새로 지은 호퍼 기념관이 구비한 최첨단 기기들의 활용을 통해 생도들은 사이버 안보와 전기공학, 그리고 컴퓨터 과학 등 분야의 핵심 과정을 이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대학 학부 시절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명문 예일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으로 석사, 그리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3년 대학교수 신분으로 해군에 입대해 장교가 되기 위한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임관했다.

 

수학자답게 처음 그가 맡은 직무는 함포의 탄도 계산이었다. 군함에 장착된 대포의 구경과 각도, 포탄 무게, 적함과의 거리 등을 토대로 최적의 탄도를 산출함으로써 명중률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러다 당시 군사적 목적에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프로그래머로 해군에 남은 호퍼는 1960년 유명한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을 창시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영어의 지시문과 상당히 유사하게 만들어진 코볼은 전문 프로그래머부터 상점 계산대 직원까지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어 순식간에 널리 퍼졌다. 호퍼가 ‘코딩의 여왕’이란 애칭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캠퍼스에 새로 들어선 사이버·컴퓨터 교육용 건물 ‘호퍼홀(Hopper Hall)’에 해사 생도들이 들어가는 모습. 미 해사 홈페이지

1966년 당시 중령 계급이던 호퍼는 60세 정년을 맞아 현역을 떠났지만 이듬해 ‘그가 꼭 필요하다’는 해군 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도로 복귀했다. 이후 계급도 계속 올라 1983년에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 미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별을 단 여성이 되었다. 80세가 된 1986년에야 퇴역했는데 본인은 ‘아직 건강하니 더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으나 해군 지휘부가 인사 규정 등을 이유로 “더 이상의 복무는 무리”라고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1992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뒤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미 해군은 그를 기리기 위해 주력 이지스 구축함 한 척에 ‘그레이스 호퍼’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