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구하라 사건’ 또…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 전세금까지 다 빼갔다

딸의 카드로 장례비, 병원비 등 결제했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도 제기

 

20대 딸이 위암으로 숨진 사실을 알고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억대의 보험금은 물론 고인의 전세보증금까지 모두 받아가는, 이른바 ‘제2의 구하라 사건’이 또 발생했다. 심지어 이 생모는 유족이 병원비와 장례 비용을 고인의 카드로 결제했다며 소송까지 제기했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A(55)씨는 숨진 딸 김모(29)씨의 계모와 이복동생을 상대로 딸의 체크카드와 계좌에서 사용된 5500여만원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서울동부지법에 제기했다.

 

김씨는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던 중 지난 2월 숨졌으며, A씨는 김씨를 낳은 후 약 1년여 만에 그의 곁을 떠나 28년간 연락도 없이 지냈다.

 

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A씨는 생전 김씨를 보살펴온 계모와 이복동생에게 갑자기 연락해 사망보험금을 나눌 것으로 요청했다.

 

사망신고 후 자신이 ‘단독 상속자’임을 알게 된 A씨는 사망보험금과 퇴직금, 김씨가 살던 방의 전세금 등 1억5000만원을 챙겼다.

 

본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현행 민법이 규정한 상속제도에 따르면 김씨의 유일한 직계존속인 A씨는 별 제약 없이 김씨가 남긴 재산 일체를 상속받을 수 있다. 김씨의 친부가 수년 전 사망했기 때문이다.

 

A씨는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계모와 이복동생이 딸의 계좌에서 결제한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 등 5000만원 상당이 자신의 재산이고, 이를 부당하게 편취당했다며 소송까지 걸었다.

 

계모와 이복동생은 민법상 상속권이 A씨에게만 있어 승소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씨의 계모는 “일까지 그만 둬 가며 딸의 병간호를 했는데, 이제는 절도범으로 몰린 상황”이라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법원은 이례적으로 2차례 조정기일을 열었다. 이후 A씨가 유족에게 전세보증금 일부인 1000만원 미만의 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후 재판을 마무리했다.

 

유족은 김씨가 암 판정을 받은 뒤 “재산이 친모에게 상속될까 봐 걱정된다”, “보험금과 퇴직금 등은 지금 가족에 갔으면 좋겠다”는 등 말을 지인들에게 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왼쪽)씨와 그의 오빠인 구호인씨. 인스타그램, 연합뉴스

 

이번 사건으로 지난해 사망한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이야기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양육 의무를 저버렸을 경우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일명 ‘구하라법’을 입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입법 청원을 했던 구하라씨의 오빠 구호인씨는 지난 5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가 ‘구하라법’을 처리해달라”고 읍소한 바 있다.

 

구씨는 2019년 11월 동생(구하라)이 세상을 떠난 후 20여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구하라씨가 남긴 재산 상속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하라법’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고,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구씨는 “법의 통과는 평생을 슬프고, 아프고, 외롭게 살아갔던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구하라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우리 가족이 진행 중인 사건에는 개정된 법이 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라와 제 가족 같은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청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