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결선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불리한 형세를 극복하고 대역전극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26일(이하 현지 시간) 유 본부장의 맞수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전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지지에 합의했다고 로이터·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WTO 164개국 중 가장 많은 44개국이 포진한 아프리카 후보를 상대로 하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유 본부장으로선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WTO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41개국, 미주 34개국(북미 3·중미 7· 남미 12·카리브해 12개국), 유럽과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44개국(EU 27개국), 아프리카 44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WTO는 27일까지 회원국 의견을 종합한 뒤 다음달 7일 전까지 차기 사무총장에 대한 컨센서스(의견 일치)를 도출할 예정이다.
처음에 EU 27개국 중 서유럽은 나이지리아를, 중·동부 유럽은 한국을 지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오콘조이웨알라 전 장관 지지를 주도했다. 유 본부장을 지지한 7개국 중 헝가리와 라트비아가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결국 EU 컨센서스에 동의했다. EU 관계자는 나이지리아 지지에 대해 “다자주의 질서와 EU·아프리카 상호신뢰 관계를 재강화하는 신호”라고 밝혔다.
현재 WTO 선거전은 복잡한 국제역학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는 대체로 같은 아프리카 출신인 오콘조이웨알라 전 장관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주요국은 과거 제국주의 종주국으로서 피지배 지역이었던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이번에 나이지리아 지지를 주도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모두 아프리카를 강점한 경험이 있다.
중국은 친중 성향이라는 점에서, 일본은 한국과 WTO를 무대로도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전 시작부터 강력한 후보였던 오콘조이웨알라 전 장관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이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할 방침이라는 교도통신 보도의 사실 여부를 묻는 말에 “국제기구 선거 투표 태도에 대해서는 각국이 외교상 이유로 밝히지 않는 대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WTO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은 친중 성향의 오콘조이웨알라 전 장관보다는 유 본부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청와대를 사령탑으로 막판 뒤집기를 위해 분투 중이다. 노무현정부 때도 초반 불리한 형세를 바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의 역전 드라마를 쓴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에도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유 본부장 지지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유 본부장 출마 후 하루에 3개국 정상과 연쇄 통화를 하기도 하는 등 각국 정상을 직접 설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성윤모 산업부 장관 등 행정부 주요 인사뿐만 아니라 박병석 국회의장,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도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국제무대에선 유 본부장의 결선 진출 가능성 자체를 낮게 봤지만 이를 우리 외교가 극복하고 있다”며 “지금은 간절히 뛰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