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몸을 구성하는 사람… ‘합성신체’ 통해 성별 선택

김보영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
여러 매체서 발표한 글 10편 모아 발간
시간여행·우주·인공지능 등 소재 활용
‘가장 SF다운 SF 쓰는 작가’ 이유 입증
남녀 차별 다룬 ‘빨간 두건 아가씨’ 이채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 김보영은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에서 인간과 사회에 자기의 시선을 시간여행, 인공지능, 우주탐험 등을 소재로 해 풀어낸다. 아작 제공

과학소설(SF)은 상상으로 빚어낸 인간과 세상을 그려내지만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SF 속 극단적 세상에서 현실은 더 첨예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김보영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가 그렇다.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했던 글 10편을 모아 발간한 소설집에서 작가는 시간여행, 우주, 인간의 의식을 이식한 인공지능 등의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산화탄소 포집기술을 소재로 한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를 작가는 “제법 깔끔하게 뽑힌 듯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원자의 움직임과 분자, 이온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 능력으로 인해 ‘나’는 사람들 각자가 분리되어 동떨어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이 합쳐지고 섞이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손을 잡을 때, 내 손바닥에서 증발한 분자가 손바닥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구성하는 8할로 존재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작가 생각은 표제작 ‘얼마나 닮았는가’에서 분명하게 읽힌다. 복사한 기억과 “세포단위에서 배양해 합성한” 의체를 가지게 된 인공지능은 자신이 왜 인간이 되고 싶어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폭력의 쾌락에 열정적이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삼기도 하는 존재다. “청명하고 순수한 이성”의 소유자인 인공지능에게 인간 특유의 “무분별한 비논리”는 감당하고 싶지 않은 짐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끝내 이렇게 고백한다.

“선장의 눈에서 전해지던 별처럼 빛나던 생각들, 풍요로운 감각, 전파처럼 전하던 마음, 햇빛처럼 쏟아지던 감정의 교류.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감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묻는 듯한 작품이다.

이런 따뜻한 시선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묘하게 공존한다.

‘0과 1 사이’에는 “모든 관계성과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얼굴”의 딸에게 당황해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이 글에서 작가는 어른들이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강요해 아이들의 시간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를 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세상을 보았어. 그 시대에는 시간여행기가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져 있었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도망쳐 다른 시대로 갔어.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함께 갖고 왔지.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그 시대에 뿌려놓았어.”

딸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엄마와 선생님들은 과거에 살고 있거나 과거에서 온 사람들일 뿐이다.

‘빨간 두건 아가씨’에서는 남녀 차별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합성신체’를 통해 성전환이 가능해진 사회에서 남녀간 적절한 성비는 완벽하게 무너져 여성을 보는 것이 “평생 쓸 행운을 다 쓸” 정도의 일이 된다. 작가는 “취업 준비하는 여자들이 줄줄이 남자 몸으로 갈아 입었다”거나 “정치하는 사람도 다 남자고 투표권을 가진 절대다수가 남자”인 사회를 그려낸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하는” 이야기 속 아가씨는 일상적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실제 여성들의 삶을 극단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