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소설(SF)은 상상으로 빚어낸 인간과 세상을 그려내지만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SF 속 극단적 세상에서 현실은 더 첨예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김보영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가 그렇다.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했던 글 10편을 모아 발간한 소설집에서 작가는 시간여행, 우주, 인간의 의식을 이식한 인공지능 등의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산화탄소 포집기술을 소재로 한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를 작가는 “제법 깔끔하게 뽑힌 듯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원자의 움직임과 분자, 이온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 능력으로 인해 ‘나’는 사람들 각자가 분리되어 동떨어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이 합쳐지고 섞이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손을 잡을 때, 내 손바닥에서 증발한 분자가 손바닥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구성하는 8할로 존재한다.
이런 따뜻한 시선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묘하게 공존한다.
‘0과 1 사이’에는 “모든 관계성과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얼굴”의 딸에게 당황해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이 글에서 작가는 어른들이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강요해 아이들의 시간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를 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세상을 보았어. 그 시대에는 시간여행기가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져 있었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도망쳐 다른 시대로 갔어.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함께 갖고 왔지.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그 시대에 뿌려놓았어.”
딸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엄마와 선생님들은 과거에 살고 있거나 과거에서 온 사람들일 뿐이다.
‘빨간 두건 아가씨’에서는 남녀 차별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합성신체’를 통해 성전환이 가능해진 사회에서 남녀간 적절한 성비는 완벽하게 무너져 여성을 보는 것이 “평생 쓸 행운을 다 쓸” 정도의 일이 된다. 작가는 “취업 준비하는 여자들이 줄줄이 남자 몸으로 갈아 입었다”거나 “정치하는 사람도 다 남자고 투표권을 가진 절대다수가 남자”인 사회를 그려낸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하는” 이야기 속 아가씨는 일상적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실제 여성들의 삶을 극단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